피노체트와 박정희
김관후
박정희를 역사적으로 어떻게 평가할까?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이 모이면 다양한 평가들이 나온다. 어떤 이는〈새마을운동〉과 〈자연보호운동〉을 일으킨 역사적 인물이며, 국민들이 대대손손 이어갈 국가미래를 설계한 지도자라고 평가하고, 어떤 이는 유신정권을 자행하여 국민들을 옥죄인 독재자라고도 평가한다.
박정희의 군사반란은 1961년이고, 칠레의 피노체트는 10년이나 지난 1973년이다. 1973년 9월 11일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칠레 육군참모총장은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을 넘어뜨리는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다. 미국은 중남미에 사회주의 정권을 원하지 않았다. 군사 쿠데타 이후 피노체트는 칠레 군사평의회를 설치하고 17년 동안 군사 독재를 시행했다.
피노체트와 박정희. 두 지도자는 공통점이 많다. 군사 쿠데타를 감행했었고, 무소부위의 권력을 휘둘렀으며, 통치기간 중 너무나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특히 집권기간이 18년, 17년으로 비슷하다는 점. 민주적인 정권을 뒤집어엎었다는 점. 재미있는 것은 피노체트가 국가테러리즘을 완성시킨 박정희를 가장 존경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칠레 국민들은 피노체트를 칠레의 아버지라 평가한다. 피노체트가 사회주의 정부를 군사 쿠데타로 무너뜨리고 집권한 뒤 각종 인권침해를 저지르며 군사독재를 했지만, 자유주의 시장경제 정책을 정착시켜 칠레 발전의 기틀을 놓았다는 것이다. 마치 한국의 박정희에 대한 평가를 둘러싼 논란과 비슷하다. 오늘날 칠레가 남미에서는 최고 선진국이라는 자부심도 피노체트에 대한 후한 평가에 작용하고 있다.
그렇지만 피노체트에게 반감을 사는 칠레국민들도 적지않다. “피노체트는 인권을 탄압했던 독재자다”라며 “젊은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덜하지만 가족 등이 실종 등 피해를 당했던 부모님과 할아버지 세대에 피노체트는 여전히 민감한 문제다”라고 말하고 있다. 모네다궁 인근 건물에는 쿠데타 당시 총탄 자국을 찾을 수 있으며, 피노체트가 반정부 인사 등을 고문·살해했던 현장인 산티아고 외곽의 ‘비야 그리말디’ 평화공원에는 갖은 고문의 현장이 오롯이 남아 있다. 지금까지도 실종된 가족의 행방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박정희에 대한 평가는 어떨까? 박정희는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았다. 반공을 국시로 하고 무자비하게 인권을 탄압하고, 한일회담반대 시위를 전면적으로 제압했으며 민청학련사건, 인혁당사건을 조작해 여러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유신헌법을 만들어 영구집권을 획책했고, 긴급조치 9호까지 발동하여 전시총동원체재로 바꾸는 등 무헌법상황을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재야인사를 강제로 납치해 죽이려 했던 인물이 아니던가?
그런데 그 박정희의 딸, 박근혜 국회의원이 부동의 1위로 차기 대선주자 대열에 나섰다.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한 일본 군인으로서의 박정희. 대한민국 국군의 군복을 입고 좌익 활동을 한 박정희. 법의 이름으로 살인을 감행한 사람으로서의 박정희, 김대중을 납치한 사람으로서의 박정희. 영호남 지역감정을 부추긴 정치가로서의 박정희가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내리면서 박근혜의 대선가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그렇지만 어느 신문은 박정희를 비난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과연 대한민국의 정통성이 박정희에 의해 만들어졌고, 박정희의 객관적 실상에 대한 언급과 그에 대한 평가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하는 일일까? 우리의 헌법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고 3.1항일독립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고, 4.19 민주 혁명을 기리고 80년대 반독재 민주화 운동의 정신을 이어가는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은 왕조시대의 산물이 아니라 헌법정신을 구현하는 국가 공동체인 것이다. 그런데 그 신문이 찬양하여 마지않는 박정희의 실체를 볼 때 아이러니를 느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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