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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 그 겨울의 거울

yjh09 2023. 12. 12. 08:53

<서울의 봄>, 그 겨울의 거울
정 근 식(서울대 명예교수)

   12.12 군사쿠데타가 일어난 지 44년, 이 사건의 아스라한 기억을 일깨우는 영화 <서울의 봄>이 수백만 시민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따뜻한 봄이 아닌 추운 겨울, 그날 저녁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불과 9시간 동안 일어난 군 내부의 권력투쟁을 다루고 있는 이 영화는 국가에 대한 충성이나 진정한 군인의 용기가 무엇인지, 그리고 진실의 역사는 어떻게 쓰여지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주지하듯이 이 사건은 한국의 1980년대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를 결정한 것으로, 다시 한번 국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배반하고 군사독재를 연장시킨 분기점이었다. 어쩌면 당시의 사회구조가 군사독재로부터 민주주의로의 급진적 이행을 허용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날의 군부쿠데타는 1961년의 그것보다 훨씬 더 정치적 명분이 없었던 것은 분명하다. 이 때문에 쿠데타의 주인공들은 곧바로 정권을 장악하지 못하고, 시간과의 지리한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국가권력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하여 또 다른 명분이 필요했다. 이것이 바로 ‘서울의 봄’과 예외 상황의 창출이었다. 지금도 1980년 5.18이 이들의 전략적 선택의 산물이었는가에 관한 논쟁이 잠복하고 있지만, 이들은 수많은 광주 시민들의 생명과 유력 정치인들의 명예를 희생양으로 삼아 현실권력을 장악했다. 그러나 이들은 진실의 세계를 장악하지 못했다. 이들을 심판하고 단죄해야 한다는 양심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이들의 영광은 일시적인 것이 되었고, 오히려 흉한 허물로 남았다.


  사죄와 용서 논쟁

  이 영화는 당시의 사건에서 진짜 영웅이 누구였는지를 극적인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더 흥미로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단지 44년전의 과거를 회상하고 재평가하는 방식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아직도 충분히 해결하지 못한 역사적 책임의 문제, 즉, 처벌과 용서라는 숙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더 나아가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다른지, 군부 독재가 또 다른 유형의 독재로 전환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숙고하게 된다.

  이 영화의 주인공 중의 하나인 전두환소장은 1997년 특별법에 따라 처벌을 받았지만, 곧바로 사면을 받았기 때문에 많은 국민들은 그가 짊어져야 할 역사적 책임을 다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특히 12.12와 5.18에 대한 진정성이 있는 사죄를 요구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진실을 부인했다. 그 대가는 준엄했다. 사후에도 그는 갈 곳이 없었다. 사실 그가 사망하기 2년전에 5.18진상규명위원회가 출범했기 때문에 그는 사죄를 통해 사후에 안식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부여받은 셈이었지만, 이를 살리지 못했다. 용서가 꼭 사죄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셈이다, 올해 초에 광주에서는 사죄와 용서의 관계에 관한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그 논쟁은 5.18 당시에 진압군으로 출동한 병사들이 가해자인가, 아니면 이들도 단지 상부의 명령에 복종했던 넓은 의미의 피해자인가라는 질문으로부터 비롯되었지만, 사죄를 해야 용서할 수 있다는 조건부 용서론과 용서가 사죄를 불러온다는 무조건적 용서론간의 갈등이기도 했다. 정해진 정답은 없지만, 이 논쟁을 통해 한국인들에게는 아직도 응보적 정의에 관한 관념이 강력하게 남아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우울한 시대를 비추는 거울

  12.12 쿠데타는 신군부를 이끌었던 사람들의 사적 욕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지만, 냉정하게 보면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비대해지고, 5.16쿠데타를 통해 핵심적 권력기구로 성장한 군을 어떻게 정상적 위치로 되돌릴 것인가라는 질문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한 결과였다. 당시의 한국의 정치사회적 과제는 무소불위의 핵심적 권력기구들을 민주적 가치와 법에 종속시켜 국민적 통제의 대상으로 재편성하는 것이었다. 부족했던 국민들의 역량은 5.18을 겪으면서 축적되기 시작하였고, 민주화와 함께 문민통제와 법치주의가 뚜렷해졌다, 그러나 새로운 문제가 이 성취의 틈새에서 자라났으니, 그것이 정치의 사법화와 검찰의 권력기구화이다. <서울의 봄>은 당시의 국가적 불행이 보안사령부로의 권력집중의 결과임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현재 이와 유사한 문제가 없는가를 묻고 있는 듯 하다. 법치주의라는 이름으로 횡행하는 권력의 오용이나 남용에 대한 경고, 또는 검찰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씻을 방안을 마련하라는 주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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