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우정-이백과 두보
이백과 두보는 나이를 초월해서 우정을 나눈 아름다운 관계다. 이백은 두보보다 11살 많았다. 그들이 친분을 맺은 시기는 742년에서 744년 사이다. 장안에서 오균의 추천으로 공봉한림이 된 이백은 관직 이름만 있을 뿐 아무런 실권 없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실망을 느끼게 되는데, 비록 현종의 극진한 대우와 총애를 받긴 했으나 각종 파티에서 단지 시를 지어 권문세가의 여흥을 돋구는 광대와 같은 생활에 염증을 느꼈던 것이다.
◇무한의 황학루 벽에 벽화로 그려진 이백의 모습.기녀가 장구를 치고 이백은 호방한 기질로 술취해 춤추고 있는 모습. |
오만하고 호탕한 행동으로 이백은 결국 고력사의 미움을 사게 돼 장안에서 추방되기에 이르는데 그때 나이 44세였다. 추방 직후 이백은 제나라 노나라 송나라 일대를 유랑하다가 두보와 만나게 된 것이다. 이때 두보의 나이는 33살이었다. 두보 역시 과거 낙방 후 팔 9년 동안 제나라와 노나라를 유랑하던 중 이백과 만나게 된 것이다. 두 거장의 역사적인 만남은 이렇게 이루어진 것이다.
한 시대를 살아가면서 분명히 아래위가 있는 데도 불구하고 두보는 11살 위인 이백을 극찬했으며 이백 역시 두보를 동료로 대우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문단이라는 것이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있으며 아랫사람 역시 윗사람에게 존경하는 행위가 잘 없고 보면 말이나. 서로 비하하고 자신만이 잘난 듯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는다.
정당과 같은 커다란 파가 있어서 애꼴을 만들어 같은 성향을 띄지 않는 문인은 배척해버린다. 그런게 문단 실세가 되어온 게 현실이다. 또 상대방의 부정이나 흠이 있으면 총궐기하듯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다.
그 대표적인 예가 미당 서정주시인과 고은시인의 관계다. 일반적으로는 같은 시대의 시인으로 활동해 왔으니까 대등한 관계로 볼지 모르나 미당과 고은시인은 어느 정도 문학에 입문한 사람은 익히 다 아는 사실인데, 그게 한솥밥을 먹었다는 것이다.
◇두보가 안사의 난을 피해 759년부터 4년간 지내면서 250여수의 시를 지었다는 사천성 성도 두보초당의 모습. |
한솥밥이란 한 식구라는 말인데 정의도 중요하고 이념도 중요하지만 법 위에 도덕이 있듯이 도덕이 상실된 법치국가라면 인간다운 세상이 아닐 것이다. 그처럼 도덕이란 인륜이 되는데 인륜은 인간정신이 아닌가.
스물 한두 살에 어느 지인의 소개로 시꾸러미를 꿰차고 미당을 찾아가 두 번째 보여준 시가 미당의 마음에 들어 `현대문학’을 통해 고은시인은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한다. 붙임성이 남달라 스승 미당의 총애를 독차지하기에 이르는데 미당은 가는 곳마다 제자 고은을 자랑하며 다녔다고 한다.
소설가 김동리선생의 말에 의하면 `미당은 은이가 있어 행복하다’는 말까지 했고 보면 사제지간 얼마나 아름다운 인간관계인가 가히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5.16 군사혁명과 4.19의거를 지나면서 군부독재가 본격적으로 등장해 80년대까지 뻗치는데 노선을 달리한 제자 고은시인은 미당이 세상을 뜬 후에도 스승 미당의 행적뿐 아니라 평생을 쓴 미당의 시를 폄하하여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가 하면 크나큰 물의를 일으킨다.
문학 작품 평가로 봐서는 미당 서정주시인을 따를 자 없다는 게 공식화된 견해이기도 한데 그것마저 폄하하기에 이른다. 한 시대의 한 시인과 한 시인의 상극, 즉 양극구도라기 보다 사제지간의 인신공격이 극에 달했던 것이다.
이것이 우리 한국 문단사 대가들의 행적으로 그 그늘을 드리워져 온 것이다. 어쨌든 슬픈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시인들도 이쪽과 저쪽으로 격렬하게 나눠지고 만 것이다. 문단의 상하, 즉 선후배사인라면 또 몰라도 한솥밥 먹은 스승이나 제자가 이 나라 이 땅에 이름난 시인으로 평가되어온 건 행복한 일이라 할 수 있는데 비극적 종말을 맞았다는 것은 하나도 배울 것이 없는 흠으로 남게 되었다면 틀린 말일까.
◇이백은 젊은 시절에 두보는 말년에 서로 오르내렸던 운명의 양자강 삼협 풍경. |
소설 `장길산’의 작가 황석영선생이 한 말이 떠오른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한솥밥을 먹은 고은은 그러면 안 돼!’라고 일축했고 보면 말이다. 우리가 문학을 왜 하는가, 문학의 효용성은 어디 있는가 라는 물음들 속에서 끊임없이 시를 쓰고 소설을 써 오고 있는데 그 이전의 문제가 인간정신의 구현이라 보며 그 덕목으로 인륜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인륜이 파괴 되어 땅에 떨어져 버린다면 누가 바라보겠으며 반기겠는가.
부자지간의 사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부자지간 보다 더 중요한 게 사제지간이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우리 사회가 양극으로 치닫는 게 빈부차이만은 아닐 것이다. 이념의 갈등도 그렇지만 부자지간 형제지간 사제지간 선후배지간 동료지간 이런 성격 속에서 인륜이 무너지니 더욱 세상이 혼탁해 지는 것이다.
전란과 부패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이백과 두보는 동시대 문인이었으면서 서로 헐뜯지 않고 칭송하며 서로의 인품을 존중했던 것이다. 그래서 헤어지면 그립고 만나고 싶어서 찾아다니고 그런 정한을 시로 읊고 했던 것이다. 시대적 삶을 감당해 내기엔 두 사람 모두 괴로웠지만 이 얼마나 로맨틱한 삶의 소유자들이었던가.
다음은 이백이 두보에게 준 `沙丘城下寄杜甫 沙丘城-魯郡’라는 시다.
나는 이곳에 무엇 하러 왔는가?
사구성에 베개 높히 베고
누우려고 왔지
성옆엔 오랜 고목,
밤낮으로 바람에 흔들리며
가을 소리내네
노나라 술은 너무나 싱거워
취할 수 없으련만
제 나라 노래소리
그리운 정 더하네
그대 그리워하는 마음
물결 같아,
도도히 흐르는 그 물결따라
그리움 실어보낸다
두보는 어떤가. `夢李白’ 즉 `꿈 속에서 이백을 보다’라는 시다.
사별이라면 한번 몹시 흐느껴
울고 치우겠지만
생이별이기에 늘상
비통함에 젖게한다
강남의 산택은
풍토병 걸리기 쉬운 곳
귀양간 그대 소식
한 자 없구나
그대 내 꿈 속에 나타나
그리움의 고통 호소하네
혹여 그대 죽은 넋이
찾아온게 아닌가 걱정되는구료.
길은 아득히 멀고 멀어
헤아리기 어렵소
그대 영혼 이곳 찾아 올 때
강남의 단풍 숲
슬픔에 파랐으리라
그대 영혼 돌아 갈 때
관새는 슬픔에
암흑처럼 캄캄하리라
그대 지금 그물에 걸려 있는데
어떻게 날개 생겨 날아왔을까
꿈에서 깨어보니
서쪽으로 기운 달빛
대들보에 가득하여
몽롱한 달빛 속에
그대 얼굴 보이는 듯
물은 깊고 풍랑 거세니
교룡에게 잡혀먹지 않도록
조심하소서
아, 이 얼마나 서로를 아끼고 걱정하며 마음으로나마 보살핌이 극진한가 말이다. 빛나는 인간정신이 흠뻑 깃든 작품이다. 역시 대국의 시인들은 다른가 보다.
구름은 하루종일
정처 없이 떠가고
떠난 그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누나
삼일 밤 연속 그대 모습
꿈 속에 보이니
진지한 그대 우정
보여주는 듯 하구료
언제나 총망히
이별을 고하면서
오는 길 어렵다고
하소연 하네
강호엔 풍파가
너무 심하오
배가 뒤집힐까 두렵다오
문을 나서며 머리를
긁적이는 그대
평생의 뜻 이루지 못한 듯
고관대작 장안에 가득한데
그대만이 홀로 초췌하구료
그 누가 말했던가?
천망은 넓으나 공평무사하다고?
늙으막에 도리어
죄인의 몸 되다니
천년만년 이름 날리면
무엇하리오?
죽고 나면 모두
부질없는 일인 것을!
역시, 두보는 현실을 꿰뚫으면서 꿈에 나타난 심상치 않는 이백의 삶을 염려하는 것이다.
◇이백이 말년 귀양길에 올라 시를 지은 무한의 황학루 풍경. |
이렇듯, 중국을 흔히 `시의 나라’라고 한다. 오랜 역사를 통해 방대하고 다양한 문화를 이루었는데, 그 문화유산을 대표하는 것이 시라는 뜻이다. 현존하는 중국의 문헌 중 가장 오래된 것이 `시경’이다. 시를 짓는 능력이 관리 선발의 기준이었던 당나라 이후 청나라때까지 거의 모든 지식인들이 시를 창작했다 할 수 있다.
수천 년 내려온 중국 시사(詩史)에 있어서 가장 높은 성취를 이루었다고 평가 받는 것도 당나라때 창작된 시, 즉 당시다.
이백, 두보, 왕유, 백거이 등 여러 시인들이 수많은 시를 지었는데,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시인의 수가 2천명이 넘고 수록된 시가 거의 5만 편에 이른다고 한다.
당나라 때 시속에는 여러 시인의 각각의 갖가지 정감이 잘 드러나는데, 몇 편을 예로 들어 보면, 이백이 봄날 달 아래서 혼자 술을 마시며 지은 시 `달 아래 혼자 술을 마시며(月下獨酌)’에는 자유분방함을 추구하다가 이루지 못한 천재의 고독감이 진하게 배어나고 있다.
◇서지월시인이 소장하고 있는 젊은 시절 검을 차고 있는 이백의 초상. |
두보가 전란의 참상을 보고 지은 시 `호의 관리(石壕吏)’에는 정치가들의 잘못으로 고통 받는 백성을 가슴 아프게 바라보는 지식인의 분노가 담겨 있다. 왕유가 대나무 숲에서 유유히 혼자 놀다가 밝게 비치는 달빛을 보고 지은 시 `죽리관(竹里館)’에는 담담한 마음으로 세계를 관조하려는 정신이 응축된 필치로 잘 표현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밖에도 인간의 다양한 정서와 사상이 녹아들어 있어서 그 매력은 그 시대에만 극한된 것이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당시의 명편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로 하여금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을 새삼 음미하게 해준다. 또, 기계문명과 찌든 물질만능주의 속에서 정신세계의 가치를 잊고 사는 우리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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