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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이 사형판결을 받고 한 유언

yjh09 2009. 8. 21. 14:12

 

지난 14일 김 전 대통령을 문병한 자리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은 “DJ 재임 기간이 가장 행복했다”고 말을 했죠. 서거 소식이 들리자 “지난 수십 년간 파란 많은 정치 역정을 걸어왔는데, 이제 천주님의 품에 안겨 영원한 안식을 누리기를 바란다”고 하네요. 그렇다면 반대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전두환 전 대통령 재임 기간에 행복했을까요?

 

전두환 전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 재임 기간이 가장 행복할 수 있었던 이유

 

서슬퍼렀던 1980년대, 12·12 군사 쿠데타와 5·18로 권력을 쥔 신군부는 ‘광주사태’를 뒤에서 조종했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내란음모죄를 뒤집어씌우고, 대법원은 사형 선고를 내립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80년, 재판에서 최후진술을 하면서 유언을 합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80년 신군부로부터 내란죄로 사형을 선고받고 사형수로 복역한다 @김대중 도서관

 

나는 아마도 사형판결을 받고 또 틀림없이 처형당하겠지만, 나는 여기서 공동 피고 여러분들에게 이 기회에 유언 하나를 남기고 싶습니다. 내 판단으로는 머지않아 1980년대 안에는 반드시 민주주의가 회복될 것입니다. 나는 그걸 믿고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먼저 죽어간 나를 위해서든, 또 다른 누구를 위해서든 정치적인 보복이 이 땅에서 행해지지 않도록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던 그가 죽게 되었을 때, 세계사회는 압박을 넣죠. 신군부는 세계여론에 밀려 무기징역으로, 다시 20년형으로 감형한 뒤, 미국으로 강제 출국시킵니다. 이렇게 모진 세월을 보낸 뒤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그는 정치보복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전두환 전 대통령을 10번 가까이 청와대로 불러 융숭한 대접을 할 정도죠.

 

그 모진 수모들과 고된 역경들을 참는 수준을 넘어 어떻게 상대를 용서하고 위하는지 신기할 노릇이죠. 다섯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몸도 성치 않게 되었는데도 자신에게 흠집을 내던 사람들을 끌어안다니… 보통 사람들은 상상하기 어려운 경지죠. 그만큼 김대중 전 대통령은 큰 그릇이었습니다.

 

레드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빨갱이라고 손가락질 하는데도 그들을 위해 평생을 바쳐

 

레드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자신을 ‘빨갱이’라고 손가락질 하는데도 그들의 자유를 위해 평생을 바칠 정도니까요. 모두가 그를 빨갱이로 알았고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기도 꺼려했지만 그들을 위해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화운동 한복판으로 뛰어듭니다.

 

어느 정도 민주주의가 이뤄지자 대통령이 되어서는 한반도평화를 이루고자 하죠. 늘 한반도에서 으르렁거렸던 먹구름을 걷히고 파란 하늘이 나타납니다. 이른바 ‘햇볕정책’이 펼쳐졌죠. 냉전이 끝났어도 영영 싸우기만 할 거 같던 두 나라의 정상이 만나 손을 잡는 모습은 아직까지 뭉클하죠.

 

남북화해를 위한 그의 노력은 참여정부로 이어졌으나 정권이 바뀌면서 뒤집혀버렸습니다.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은 당원 행사에서 “김정일이 공항에서 껴안아 주니까 치매 든 노인처럼 얼어서 서 있다가 합의해준 게 6·15 선언이다"고 말할 정도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은 깔아뭉개지고 있죠.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지난 2000년 6월 13일 오전 평양순안공항에 도착한 김대중대통령과 직접 영접나온 김정일국방위원장이 밝은 표정으로 역사적인 악수를 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제 2의 냉전이 온 거 같다며 걱정하던 김 전 대통령, 그가 마지막에 남기고 싶었을 말

 

보다 못해 김대중 전 대통령은 노구를 이끌고 나섭니다. BBC와 인터뷰에서 제2의 냉전이 온 거 같다며 걱정하던 그는 특사로 북한에 가려다 막히자 올해 5월 21일에 만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에게 방북을 요청합니다. 그리고 6.15 공동선언 9주년 기념식에서 민주주의와 한반도평화를 외치셨죠.

 

클린턴은 평양에 가 김정일 위원장과 면담을 하여 한반도 정세의 중대한 전환점을 만들어냈고 현정은 회장도 북한을 방문하여 대화에 물꼬를 텄습니다.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던 이명박 대통령도 더 이상 팔짱끼고 기다릴 수만은 없게 되었죠. 1980년에 하셨던 유언을 빌려와 그가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었던 말을 미루어 짐작해봅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뜻이 헛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는 여기서 여러분들에게 이 기회에 유언 하나를 남기고 싶습니다. 제 판단으로는 머지않아 2010년대 안에는 반드시 한반도 평화가 올 것입니다. 나는 그걸 믿고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먼저 죽어간 나를 위해서든, 또 다른 누구를 위해서든 제 2의 냉전이 이 땅에서 행해지지 않도록 부탁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