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가 뒤숭숭한 봄날의 오후와
춘분을 갓 지난 음색을 지나
우리는 또 무슨 노래로 흔들리는 것이냐
누이야
봄꽃처럼 너는 홀로 깊지 말아라
홀로 별이 되지는 말아라
늑골을 적시는 봄바람이 닿는 곳이면
무심한 돌멩이마저 몸살이 난다는데
목련의 꽃 그림자가 깊어갈수록
열정의 무렵에 서둘러 보낸 편지는
속절없이 반송되어 오고
낯선 목숨은 아직까지 주소불명이란다
이승의 기다림들은 둥근 나무들의 이마를
짚어가며 젖은 고백이 난분분 난분분하도록
저리 꽃사랑을 피워대느니
그러므로 누이야
사랑인 것으로
그리고 때로 사랑 아닌 것으로
절망하지 마라
물기어린 음표들을 치장하지도 말아라
봄날은
가슴속의 단정한 기다림 하나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몸살 나도록 햇빛 고운 날에
그래도 믿는다
목숨거는 사랑을 믿는다
누이야.
아름다운 노을이 되고
세상이 꽃이 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톡, 톡, 꽃잎이 떨어질 때마다
눌러쓴 흘림체의 글씨가 보입니다
편지를 쓰는 동안,
젖은 기억이 되살아나고 추억은 아름답습니다
꽃잎으로 떨어진 편지들...
오랫동안 뜯지 않았던 편지를
몸에 담아놓고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슬퍼서 너무나 아파서
한쪽으로 옮겨 놓았던 편지를 다시 읽어봅니다
집 잃은 아이처럼
방황하는 기억의 한 부분을 떼어
꽃잎으로 곱게 포장해놓습니다
계절이 지나갈 때마다
꽃 편지를 쓰지만 읽을 줄 아는 사람은
단 한 사람뿐입니다
녹슨 우체통 속에서 늙어가는
흘림체의 편지를 봄에게 전송합니다
봄이 뜯는 순간,
꽃 봉우리들이 활짝 웃으며 터집니다
봄은 유일하게
내가 쓴 꽃 편지를
해독할 줄 아는 당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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