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 상 (宰 相)
- 한 국 편 -
- 박윤규 지음 -
◎ 최초의 재상(宰相)
예로부터 한 나라의 설관분직(設官分職)은 별자리에서 기본 모형을 얻었다.
항성인 북극성은 유일 군주를 상징하고, 그 주변을 둘러싼 삼태성이 곧 재상인 삼공(三公)이다.
그리고 숙진(宿辰)에 따라 27대부(大夫)와 81사(士)가 있었다.
물론 이는 중국 사료에서 발견되는 모형이지만, 동국의 실정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특히, 삼공의 보좌는 최근 세상인 조선에서부터 상고까지 공통적인 체계였다.
고주몽이 동부여에서 망명할 때 오이, 마리, 협보 세 친구가 보좌했다.
그리고 엄사수를 건너 모둔곡에 이르렀을 때도 제사, 무골, 묵거 세 사람이 고주몽을 받들어 창업을 했는데, 그들이 고구려 최초의 삼공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사 최초의 삼공은 누구일까?
이는 곧 겨레의 시원에 대한 물음과 다름없으니 환웅의 신시개천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한다.
사적(史籍)으로 추정할 수 있는 인류 역사는 6천년 가량이다.
그러므로 ‘삼국유사’가 전하는 바, 환웅의 신시개천은 인류 최초의 정치적 대사건일지도 모른다. 천제 환인의 아들 환웅이 하늘에서 이땅에 내려올 때도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왔다. 바로 이 삼공의 보필에 힘입어 새로운 교화를 펼쳤다. 왕과 재상과 정치는 그 시원에서부터 불가분의 관계였음이 어김없이 드러난 셈이다.
‘중국 고대신화’에도 그들 삼공은 비와 바람을 마음대로 부리는 천신(天神)으로 묘사되어 있다. 황제 헌원과 치우의 대결에서 풍백과 우사는 주군인 헌원을 배반하고 치우의 편을 들었다. 이는 풍배과 우사가 헌원에 예속된 게 아니라 치우와 동족이라는 암시를 준다.
같은 책의 강태공 일화에서도 풍백과 우사가 등장한다. 강태공이 무왕을 받들고 은의 주왕을 칠 때 홀연히 신이한 이들이 나타나 길을 가로막았다. 사해(四海)의 신군(神君)을 옹위한 풍백과 우사가 천제의 군단을 거느리고 온 것이었다. 그들을 보고 무왕은 두려워하여 접견을 회피했고, 강태공은 예로써 그들을 맞아들여 설복했다. 그리하여 그들에게 정벌의 허락을 얻은 다음에야 비로소 은을 멸하고 주나라의 천하를 이루었다.
신이한 법력을 지닌 천제의 군단은 어디서 온 어떤 종족인가.
‘중국 고대신화’는 하백(河伯)의 이름은 풍이(馮夷), 우사의 이름은 영(詠), 풍백의 이름은 이(姨)라고 했으니 천제의 군단은 구이(九夷)의 나라, 즉 단군 조선에서 왔음을 유추할 수 있다. 중국은 숱한 침략전쟁을 통해 동이 겨레의 시원과 융성을 소각, 삭제, 왜곡했지만, 그들의 사서와 야사, 신화에는 이렇게 흔적이 남아 있다.
이들 삼공에 대한 견해와 역할이 한국사와 중국사에서는 사뭇 다르게 나타난다. 중국에서는 풍백과 우사는 재상이 아니라 천제가 파견한 제왕의 특별보좌관이었던 듯하다. 이에 비해 동국에서는 그들이 분명히 삼공으로서 천왕을 보좌하고 정사를 주도했다.
‘한단고기’ ‘삼한관경 본기’에는 환웅이 행차할 때면 “풍백은 천부(天符)를 새긴 거울을 들고 길을 열고, 우사는 북을 치면서 춤으로 길을 인도하고, 운사는 백검(伯劍)으로 호위를 담당했다”고 씌어 있다. 같은 책 ‘소도경전본훈’에 삼공의 직임을 설한 기록도 있다.
[ 정사(政事)는 나라를 다스리는 것에 관한 일이라. 풍백은 약속을 세우고,
우사는 이를 다스림으로 시행하고, 운사는 형(形)을 행해야 하나
각각 그 직권을 서로 침범하지 못할 것이다. ]
인용은 44대 단군 구물시대의 기록이니 전국 시대 초인 기원전 5세기경이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짐작하기 어려우나, 환웅이 신시개천한 이래 고조선 말기까지 풍백, 우사, 운사가 삼공으로서 정사를 이끌어왔음은 분명한 듯하다. 고대의 신선 적송자는 신농 임금의 우사 출신이라고 하니, 그들 삼공이 대도의 체득자였음도 짐작이 가는 일이다.
◎ 한국의 이름난 재상들!
명림답부(99세의 혁명가)
을파소(신시이화의 정교를 되살리다)
거칠부(신라 중흥의 기반을 닦다)
성충(백제의 마지막 등불)
연개소문(千世無比의 풍운아)
최승로(40년의 침묵, 5년의 개화)
강감찬(지상에 하강한 문곡성)
김부식(배짱과 패기의 독불 재상)
최충헌(칼을 든 공작새)
이제현(홀로 원나라와 싸운 민족의 자존심)
정몽주(대나무로 피어난 일편단실)
정도전(재상의 나라를 꿈꾼 해동 장량)
황희(태평성대를 꽃피운 조선의 용광로)
신숙주(선비는 변명하지 않는다)
유성룡(하늘이 준비한 재상)
최명길(길은 달라도 마음은 하나)
채제공(꽃 진 자리에 다시 피는 꽃)
김홍집(황혼녁의 마지막 영의정)
◎ 최승로의 ‘왕도(王道) 설!
전하께서는 마땅히 착한 것을 몸에 익히고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또한 좋지 않은 것으로는 교훈을 삼고,
급하지 않은 일은 그만두고,
이익이 없는 수고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임금은 위에서 평안하시고 백성들은 아래에서 기뻐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든 시작할 때의 착한 마음으로써
아름다운 끝을 맺도록 하시고,
스스로 교만하거나 자랑하지 말고,
백성에 대해 염려하십시오.
그러면 구하지 않아도 복이 스스로 찾아올 것이며
재앙은 기도하지 않아도 사라질 것입니다.
------------‘고려사’ 열전, 시무 28조-----
※ 우리나라에서는 고대로 부터 황웅이 전한 대도(大道)의 융성과 몰락으로 우리 민족의 삶과 궤를 같이 했다. 대도는 신도, 신선도, 밝도, 밝달법, 선도, 풍류도, 국선도, 현묘지도 등으로 불리며 겨레의 얼을 이었다. 그 사상은 경천애인(敬天愛人)과 광명사상(光明思想)으로 집약되는데, 특히 밝(태양=하늘)을 경외하며, 천인합일(天人合一)을 추구하는 수도의 실천 윤리는 백의민족(白衣民族, 흰옷을 입은 민족이 아니라 하늘과 밝음을 사모한다는 뜻)이라는 고유한 이름을 낳게 했다. 동이 겨레는 이 사상의 융성여부에 따라 부흥하거나 쇠락하곤 했던 것이다.
재 상 (宰 相)
- 중 국 편 -
- 박윤규 지음 -
◎ 재상(宰相) : 一人之下 萬人之上 일인지하 만인지상
- 행정기관의 우두머리
- 재(宰) : 요리사, 상(相) : 보행을 돕는자(눈을 대신하는 지팡이)
- 위로는 임금을 가르치고, 아래로는 만백성을 교화한다.
◎ 천명(天命)은 왕을 세우고, 지명(知命)은 재상을 세운다!
- 왕은 하늘이 내고, 재상은 땅이 세운다.
- 집안이 어려우면 어진 아내를 그리게 되고,
나라가 혼란하면 어진 재상을 그리게 된다.
◎ 임금이 불초(不肖)하면 나라가 위태하고 백성이 어지럽고,
임금이 어질면 나라가 편안하고 백성이 잘 다스려지나니,
화복(禍福)은 천시(天時)가 아니라 군주에게 있음이라.
- 강태공, 육도삼략 -
≪ 재상의 자질 ≫
① 도(道)를 터득한 자(도의 체득자)
- 천지운행의 원리를 치세에 적용할 수 있는 도의 체득자
- 知者不言 言者不知 지자불언 언자부지
도를 아는 자는 말이없고, 말하는 자는 도를 모른다.
- 노자 -
② 조화를 일구는 지휘자
- 분쟁을 조정하고 화합을 도모해 안정을 이루는 것이 중요
- 백성은 백성대로 대신은 대신대로 각자의 소임을 다할 수 있게 끔
여건을 조성해 주어야 한다.
- 재상은 어떤 악기도 연주하지 않으면서, 모든 연주자를 통솔해
아름다운 화음을 연출해 내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다.
≪ 재상의 책무 ≫
① 음양을 조화롭게 다스린다.
- 재상은 위로는 천자를 도와 음양을 다스리고 사계절에 따르며,
아래로는 만물이 제대로 자라도록 하고,
밖으로는 사방 여러 나라와 제후들을 달래며,
안으로는 백성과 가까이 지내고,
경대부들이 각각 자기 직책에 충실하도록 살피는 것이다.
- 사기, 진승상세가, “진평”-
② 제왕을 가르친다.
- 신하가 군주를 받드는 것을 보필(輔弼)이라고 한다.
이는 단순한 섬김의 뜻이 아니다.
보(輔)는 길을 이끄는 것이요
필(弼)은 잘못을 바로 잡는 것이다.
- 보필이란 위로는 군주가 올바른 정사를 펴고,
잘못을 하지 않도록 가르치는 것이며,
아래로는 만 백성을 교화와 상벌로서 다스려야 한다는 뜻.
- 고대 제왕들은 재상을 사(師)로 받들어 스스로 가르침을 구했다.
③ 인재를 추천한다.
- 사람을 아는 것이 왕도(王道)요,
일을 아는 것이 신도(臣道)다
- 설원 -
- 인재를 선발하는 것은 재상 책무의 처음이요, 마지막이다.
- 인사(人事)는 만사(萬事)
④ 백관을 통솔하는 사직지신(社稷之臣)
- 재상 = 총백규(總白揆)
백관을 총괄하고 모든 업무를 종합해 조정하는 책무가 있다.
- 사직지신 : 능히 사직을 바로 세우고
상하의 마땅함을 변별해 그 이치에 맞도록 한다.
그리고 백관(百官)의 질서를 제정해 각기 마땅한
직분을 주며 법령을 마련해 사방에 두루 퍼지게 한다.
⑤ 백성을 따르게 하여 나라를 안정시킨다.
- 후대로 내려오면서 재상의 책무는 크게 축소 되었다.
음양을 다스리고 제왕을 교육하는 것은 자질이 떨어진
후대의 재상으로서는 심히 감당하기 버거운 것이었다.
재상의 직임을 어느 한 사람이 총괄하는 것도 무리였다.
따라서 후대로 내려 올수록
재상은 총백규로서 권력을 차지하는 한편,
민심을 하나로 모아 따르게 하여
나라를 안정시키는 것이 주 책무가 되었다.
≪ 재상의 길 ≫
① 나아갈 때 보다 물러날 때를 잘 헤아려야 한다.
- 영화를 지속시키고자 욕심을 부리면 결국 화를 초래하고,
겸허하게 물러나면 후대까지 영화를 누린다.
② 무치(無治)의 치(治)
- 재상이라고 해서 모두가 기발한 정책을 내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 기존의 제도를 엄수하면서 백성들이 그게 적응해 안정을 찾도록
하는 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재상의 다스림이다.
③ 권력과 결탁하지 않는다.
- 빈궁할 때 사귄 벗은 절대로 잊을 수 없고,
가난할 때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온 아내를 내쫓을 수는 없는 법
貧賤之交 不可忘 糟糠之妻 不下堂 빈천지교 불가망 조강지처 불하당
④ 청렴이 가장 큰 명예다.
- 군자가 덕이 있으면 방 안에서 중얼거려도
천 리 밖에서 알아 듣는다.
※ 재상의 변천 : 스승에서 신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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