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만나자는 약속은 사람 사는 일이란
강인한
오늘이 어제 같거니 바람 부는 세상
저 아래 남녘 바다에 떠서
소금 바람 속에 웃는 듯 조는 듯
소곤거리는 섬들
시선이 가다 가다 걸음을 쉴 때쯤
백련사를 휘돌아 내려오는 동백나무들
산중턱에 모여 서서 겨울 눈을 생각하며
젖꼭지만한 꽃망울들을 내미는데
내일이나 모레 만나자는 약속
혹시 그 자리에 내가 없을지 네가 없을지
몰라 우리가 만나게 될는지
지푸라기 같은 시간들이 발길을 막을는지도
아니면 다음 달, 아니면 내년, 아니면 아니면
다음 세상에라도 우리는 만날 수 있겠지
일찍 핀 동백은 그렇게 흰눈 속에
툭툭 떨어지겠지
떨어지겠지 단칼에 베어진 모가지처럼
선혈처럼 떨어지겠지
천일각에서 담배 한 모금 생각 한 모금
사람 사는 일이란
어제도 먼 옛날인 양 가물거리는
가물거리는 수평선, 그 위에 얹히는
저녁놀만 같아서.
본명 강동길
1944년 전북 정읍 출생
전주고등학교, 전북대학교 졸업
196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
1982년 전남문학상
시집으로 <異常氣候>, <불꽃>, <全羅道詩人>,
<우리 나라 날씨>, <칼레의 시 민들>, <황홀한 물살> 등
신춘시 동인(16집~19집), 목요시 동인,
현재 원탁시 동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