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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과 셜록 홈즈

yjh09 2014. 3. 12. 10:32

정약용과 셜록 홈즈

 

 

김 태 희 (다산연구소 기획실장)

  도대체 어떻게 알았을까? 누구도 그냥 지나치는 사소한 것들을 놓치지 않았다. 그 조각들을 모아 상식적 논리들로 연결했다. 마침내 진상은 선명하게 드러났다. 형조참의 다산 정약용과 사립탐정 셜록 홈즈의 얘기다. 두 사람 사이에 다른 게 있다면 셜록은 현장에서 탁월한 관찰력을 보여주는데, 현장을 접하지 못한 다산은 공안과 검안 등 사건기록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주특기였다.

기록에 대한 면밀한 검토로 사건 해결

  다산의 형사사건 해결능력을 알게 된 정조가 그를 형조참의로 임명했다. 정조는 ‘함봉련 사건’을 의안(疑案, 의심이 나는 사건)으로 간주하고, 다산에게 자세히 조사할 것을 명했다. 함봉련 사건 개요는 이렇다. (<심리록>, <시문집>, <흠흠신서>가 약간씩 다른데 다산의 <흠흠신서>를 중심으로 정리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평창 나졸이 환곡을 독촉하여 김태명의 집에서 송아지를 끌고 나왔다가 김태명의 집안사람들과 몸싸움이 벌어졌다. 김태명이 나졸의 가슴을 무릎(膝骨)으로 짓이겨 송아지를 탈환했다. 김태명 일가의 머슴이었던 함봉련은 땔감을 지고 돌아오는 길에 혼내주라는 김태명의 말을 듣고 땔감을 진 채 서서 그 등을 밀어뜨렸다. 넘어졌던 나졸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서 그 아내에게 말하기를 “나를 죽인 사람이 김태명이다. 원수를 갚아다오.” 하소연하고 며칠 후 숨이 끊어졌다. 아내는 서울의 북부에 달려가 고발했다.

  다산은 1차 2차 검시(檢屍)를 기록한 검안(檢案)부터 검토했다. 가슴에 검붉고 단단한 둘레 3촌 7푼의 상흔이 있고, 코와 입은 피로 막혀있고, 다른 다친 흔적은 없었다. 사망 원인은 타격에 의한 치사. 정범은 함봉련, 목격자는 김태명이었다. 이임(里任)과 세 이웃사람은 모두 봉련이 밀어서 죽인 것이라 진술했다.

  다산은 정범이 바뀌었다고 결론지었다. 그 논거는 이렇다. “형사사건을 판결하려면 세 가지 근거, 즉 유족 고소인의 진술(苦招), 검시 결과(帳驗), 공적인 증거(公證)가 합치되어야 한다. 유족의 진술과 검시 결과가 합치함에도 이는 무시되었다. 아내에게 원망한 것도 김태명, 원수를 갚으라고 한 사람도 김태명, 당초 독촉한 것도 김태명의 환곡 때문이었고, 빼앗은 것도 김태명의 송아지였다. 다만 김태명은 마을에 굳게 뿌리를 내리고 이웃을 호령할 수 있는 사람이다. 짓찧은 것은 김태명의 무릎이요, 떼민 것은 함봉련의 손이었다. 무릎이 닿은 곳은 가슴이요, 손바닥이 닿은 곳은 등이었다. 등에는 흔적이 없고, 가슴은 3촌이나 검붉으니, 이 흔적을 근거로 판단하면 누구의 범행이겠는가?”

  또한 다산은 증인이란 공적인 증거(공증)라면서 대략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유족은 복수심이 앞서서 증인이 될 수 없고, 범인은 자신이 살려고 하므로 증인이 될 수 없다. 김태명을 목격한 증인으로 삼았으나 범인으로 고발당한 자이므로 공증이 될 수 없다. 이웃 사람이 증인이 되는 것은 그 마음이 양쪽에 고르고, 옆에서 본 사람이 증인이 되는 것은 자신의 죽고 사는 것과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서 이웃 사람은 김태명의 친인척이 아닌 사람이 없어 여러 사람이 부화뇌동하여 이 사건을 성립시킨 것이다.

진상을 밝히는 명쾌함에 잘난 체도 매력

  정약용의 주장에 의해 함봉련의 억울함이 인정되고 석방되었다. 대신 김태명을 조사 처리하도록 했다. 다산이 형조참의로 임명받고 어전에 올랐을 때, 임금이 형조판서에게 이렇게 말했다. “경은 이제 늙었소. 참의는 나이도 젊고 총명하니, 경은 모두 참의에게 맡기고 편히 지내시오.” 이리하여 함봉련 사건을 비롯해 여러 형사사건을 도맡아 해결했다. ‘자찬묘지명’에 나온 글이다. 자랑하는 듯한 정조의 글에서 문득 BBC 드라마 셜록 홈즈로 분한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잘난 체하는 얼굴이 오버랩된다. 복잡해 보이는 사건을 정교한 논리로 파헤쳐 진상을 밝히는 명쾌함에 그 잘난 체도 매력이다.

  얼마 전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였다. 우리 사회의 정의에 대한 갈증을 보여준 현상이기도 했는데, 이 책에서는 결코 쉽지 않은 정의의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세상사 쉽지 않지만 당연한 정의 문제조차 어려운 일처럼 되어선 곤란하다. 마찬가지로 세상사 복잡한 것이기도 하지만 관심과 상식을 갖고 조금만 합리적 추론을 해보면 명백한 정의와 진실이 많다. 초등학교 때 셜록 홈즈 시리즈를 서점에서 빌려보면서 명탐정을 꿈꾸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어디 나뿐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