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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종이란 어떻게 다른가?

yjh09 2007. 12. 21. 12:58

조와 종이란 어떻게 다른가?

우리가 알고 있는 임금의 묘호, 조와 종의 차이점



 역사에 관련된 질문을 할 때 마다 단골로 나오는 주메뉴가 바로 조와 종의 차이점이다.

흔히 태조, 세종과 같은 호칭을 묘호(廟號)라고 한다. 묘호는 왕이 죽은 후에 신하들이 의논하여 붙이는 것으로 '태', '세', '문'과 같이 첫글자는 선왕의 업적을 평가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글자마다 고유한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뒤에 붙은 '조'와 '종'의 기준은 무엇일까?

 고려 초기의 학자이자 정치가였던 최승로가 성종에게 올린 시무 28조에,

   “대체로 공이 큰 임금을 조(祖)라 일컫고, 덕이 높은 임금을 종(宗)이라 일컫는다”

라 하여, 창업 및 공이 높은 임금을 조 라 하였고, 덕이 높은 군주를 일컬어 종 이라 하였음을 알 수 있다.(<고려사> -열전- ‘최승로’ 편)

  중국의 황제들은 일반적으로 대부분 '종' 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조'는 아주 특수한 경우로, 대개는 왕조의 개창자에게 붙여주는 특수한 영예였다. 그런데 이것이 조선에 들어와서 묘하게 변형된다. 변형이 시작된 것은 세조 묘호를 올린 예종때 였다. 쿠데타로 집권한 세조는 자신의 쿠데타의 명분을 김종서같은 권신들이 국가를 장악하여 왕이 허수아비가 되고 결과적으로 왕가가 망할 뻔 했기 때문이라고 포장했다. 그의 묘호 세조는 이 주장을 반영한 그의 아들인 예종의 주장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종실록>) 왕조를 위기에서 구했으니 왕조를 새로 개창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그 후 선조는 임진왜란을 극복하여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공로로, 인조는 광해군을 몰아내고, 병자호란을 극복했다 하여 '조'를 붙였다. 후기로 가면 이것이 점점 남용화가 되다 시피 하여 영조와 정조는 나라를 다시 부흥시켰으니 창업의 공과 맞먹는다 하여,  순조는 홍경래의 난을 극복했다고 해서 '조'를 달았다. 그렇지만, 선조나 영조, 정조, 순조는 모두 처음에 쓰여진 묘호는 덕이 높은 임금에게 붙여진 ‘종(宗)’ 이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이전에는 어떻게 붙여졌을까? 최초로 조와 종이 쓰인 것은 삼국시대라고 하는데, 그것은 고구려의 태조(국조)왕, 백제의 고이왕, 신라의 미추왕이 국가 기반을 확고하게 했다 해서 왕조의 개국자에게만 주어지는 ‘태조(太祖)' 라는 묘호를 지어 각각 불렀다는 데에서도 알 수 있다.

  종(宗) 이라는 묘호가 붙여진 것은 신라 무열왕 사후 문무왕때 였다. 즉, 삼한일통에 공로가 많아 태조(미추왕)의 업적에 비견된다 하여 문무왕이 무열왕 김춘추에게 ‘태종(太宗)’이라는 묘호를 올렸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당이 알게 되자 즉각 태종 묘호의 폐지를 요구해 오는데, 이유인즉은 자신들에게 태종(이세민)이 있으므로 굳이 신라에서 태종이라는 묘호를사용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나.당간의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하지만, 당시 신문왕은 무열왕이 삼국통일에 기여한 공이 크다는 이유를 들어 당의 요구를 일축해 버렸다.(<삼국사기> -신라본기- ‘신문왕’ 조)  

  고려시대에는 태조와 그 추존된 조상 3대(시조, 의조, 세조) 이외에는 모두 철저히 종을 사용하도록 하였지만, 후기 원의 간섭기에 이르러 고려가 원의 반 속국으로 전락하자 천자의 묘호를 함부로 쓸 수 없다는 원의 압력에 의해  ‘-왕’ 이라는 칭호로 격하되고 말았다. 충렬왕이니 충선왕이니 하는 왕의 칭호가 그 예라 할 수 있다.

   항간에서는 정실부인 소생이거나 정당하게 장자가 계승했으면 종, 그렇지 않으면 조를 붙인다는 이야기도 돈다고 한다. 따져보면 그것도 비슷하게 맞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보면 과연 우리나라다운 변형이다라는 탄식아닌 탄식을 하게 한다. 창피한 이야기지만 중국과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제일부인, 제이부인, 정실과 측실의 자녀를 차별하는 풍조가 훨씬 심했다고 한다. 서얼 차별은 중국에는 없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법이다. 심지어 황제와 왕의 상징은 용인데, 중국에서는 황제를 상징하는 용은 칠조룡이라고 발가락이 일곱 개, 왕의 경우는 발가락이 5개인 오조룡을 새긴다. 중국의 구별은 그것 뿐인데, 그것이 우리나라로 들어오자 왕은 5개, 세자는 4개, 대군(왕비 소생의 왕자)은 3개, 군(후궁 소생왕자)는 2개 이런 식으로 구별이 되었다. 매사가 이렇다 보니 '조'와 '종'의 호칭법에서도 한국적인 해석이 나온 것 같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문화재청, 세종대왕유적관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