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여에서 아버지 주몽을 찾아와 태자가 된 유리는 고구려 2대 임금님이 되었습니다. 유리왕은 비류국 송양 왕의 딸인 송 왕후와 결혼하여 아주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결혼한 지 1년 3개월 되는 해 송 왕후는 아이를 낳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홀로 살던 임금을 보다 못해 신하들은 골천 사람의 딸인 화희를 왕비로 추천하였습니다. 화희는 얼굴이 아름답고 재주가 뛰어난 지혜로운 여자였습니다. 유리왕은 화희와 결혼을 했지만, 화희를 마음 속 깊이 좋아할 수가 없었습니다. 유리왕은 아직 일찍 죽은 송 왕후를 잊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유리왕은 마음을 달래려 가끔 사냥을 떠났습니다. 어느 날 강가로 사냥을 나갔다가 송 왕후를 너무도 닮은 치희라는 한 여인을 만났습니다. 송 왕후를 닮은 치희를 궁으로 데리고 들어온 유리왕은 그녀를 극진히 사랑하여 매일 그녀를 찾았습니다.
먼저 후궁이 된 화희는 점점 치희에 대한 질투와 미움이 생겨났고 치희를 아주 차갑게 대했습니다. 유리왕이 치희를 찾아갈 때마다 치희는 눈물로 자기의 처지를 하소연했습니다.
"화희 때문에 너무 힘듭니다. 낯선 이 나라에 와서 왜 이렇게 어렵게 살아야 하는지요."
두 여인이 자주 싸우자 유리왕은 양곡에 동궁과 서궁을 지어 각각 떨어져 살게 했습니다. 그래도 둘 사이는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화희는 치희에게로 마음이 기우는 유리왕을 볼 때마다 불안하였습니다.
어느 해 봄, 유리왕은 여러 신하들을 데리고 기산 쪽으로 7일 동안 사냥을 나갔습니다. 유리왕이 사냥을 나가 있던 동안에 화희와 치희는 아주 크게 싸웠습니다. 왕이 나가 있는 동안 한번도 화희가 있는 궁에 인사를 드리러 오지 않는 치희를 괘씸하게 생각한 화희는 시녀를 시켜 치희를 불러오게 했습니다. 그러나 치희는 화희가 몇 번이나 부른 후에야 겨우 화희 앞에 나타났습니다. 화희는 불쾌했습니다.
"어찌하여 불러도 얼른 나타나지 않는가? 왕의 귀여움을 받는다고 해서 눈에 보이는 게 없는 모양이구나. 너는 고구려의 여자도 아니고 한인 종자인 주제에 뭐가 잘났다고 이토록 무례하게 구느냐."
치희는 자신을 한인이라고 깔보는 화희의 말을 듣고 속에서 화가 부글부글 끓어 올랐습니다. 그녀는 씩씩 숨을 몰아쉬며 나왔습니다.
"내 어찌 이런 모욕을 받고 여기 머문단 말인가. 친정으로 가야겠다."
유리왕은 많은 사냥감을 들고 기뻐하며 돌아왔습니다. 오자마자 바로 치희의 궁으로 달려갔으나, 왕을 반기며 달려 나올 치희의 모습은 아무 데도 없었습니다. 왕은 곧 궁으로 들어와 화희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치희에게 한인의 천한 계집이 버릇이 없다고 하였더니 그 말을 듣고 집을 나가 버렸나 봅니다."
유리왕은 당장 치희의 집으로 갔습니다.
"치희야, 너는 나의 마음을 모르느냐? 내 제일 먼저 너를 보러 갔건만 네가 없어 몹시 상심했었다. 나와 함께 돌아가자"
왕의 말을 듣던 치희의 눈가에 눈물이 방울방울 맺혔습니다.
"왕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어이하여 그런단 말이냐?"
"더 이상 화희의 괴롭힘을 견디기 어렵습니다."
"내가 그대 곁에 있으니 아무 염려 말아라."
"아니옵니다. 저에 대한 욕이라면 참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천한 한인
계집이라며 한인을 모욕하였사옵니다."
"그대가 없으면 무슨 낙으로 살겠느냐? 다시는 그런 말을 못하게 하겠으니 나와
함께 가자, 치희야."
"화희를 내쫓는다면 가겠습니다. 그렇게 하실 수 있으십니까?"
왕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무겁게 입을 떼었다.
"그렇게 할 수는 없느니라."
"그렇다면 가지 않겠습니다."
왕이 치희를 보니 입술을 꼭 깨물고 단호한 표정이었습니다. 도저히 뜻을 꺾을 수 없어
보였습니다. 한참을 말없이 있던 유리왕은 힘없이 입을 열었습니다.
"아무래도 그대의 뜻을 돌이킬 수 없겠구나. 나는 여기서 돌아가야겠다."
유리왕은 쓸쓸히 궁을 향해 돌아오다가 꾀꼬리 소리를 들었습니다.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황금빛을 반짝이며 꾀꼬리들이 짝을 지어 훨훨 날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왕은 더욱 안타까워 그 자리에서 꾀꼬리를 한참 바라보다가 시 한 수를 지었습니다.
“펄펄 나는 저 꾀꼬리
쌍쌍이 노닐건만
외로운 이 내 몸은
누구와 함께 돌아가리”
이것이 유리왕의 애처로운 시, ‘황조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