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우다 1~3
현기영 (지은이) 창비 2023-07-03
정가 51,000원
판매가 45,900원 (10% 할인)
편집장의 선택
"<순이 삼촌> 현기영 필생의 역작"
1948년 제주에서 일어난 일은 오래도록 금기였다. 사건의 이름조차 정확히 정해지지 않았고,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비밀에 부쳐졌다. 2017년 제2회 제주4.3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한 <한국전쟁의 기원> 브루스 커밍스의 연구에 따르면 실제 피해자의 수는 공식 피해자인 1만4천여명을 훨씬 웃도는 6만여명에 달할 것이라고 하지만, 사건 피해자들은 '좌익'이라는 연좌를 피하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숨겼다. 1978년 <순이 삼촌>을 발표한 현기영이 '사건'으로 인한 피해자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린 후, 작품은 금서로 지정되었고 작가는 보안사로 끌려가 고초를 겪었다. 30년 전의 일로 환청을 겪던 '순이 삼촌'의 이야기 이후 다시 사십년이 훌쩍 흘렀다. "우린 남도 아니고 북도 아니고 제주도우다!"라는 외침과 함께 <순이 삼촌>의 작가 현기영이 필생의 대작을 완성했다. 유홍준, 이창동, 도종환, 정지아, 강요배, 박태균, 최태성이 추천하며 작가에게 힘을 보탰다.
설문대할망이 제주도를 만들던 시절의 전설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대대로 제주 바다를 일군 순흥 안씨의 후손 안창세는 다큐멘터리를 찍겠다는 후손들에게 열흘 동안 그 사건에 대해 처음으로 말한다. 조선 시대엔 유배지로 멸시당하며 섬을 봉쇄당하고, 일제 시대엔 태평양 전쟁 기지로 수탈당하던 땅. 많은 제주인들이 이 땅을 떠나 오사카 등으로 떠나도록 밀어냈던 땅. "너희들 눈에는 내가 살아 있는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난 허깨비여. 이미 죽은 사람이란 말이여."(19쪽)라고 말하는, 살아 있는 자 안창세의 목소리로 그날의 참혹함을 정확하게 마주한다. 애월, 세화, 성산포 같은 아름다운 지명과 함께 구체적으로 떠오르는 기억해야 할 사람들. 이 참혹한 사건을 두고 현기영은 작가의 말에 이렇게 썼다. 이 확신을 위해, 우리는 소설을 읽는다.
어떠한 비극, 어떠한 절망 속에서도 인생은 아름답고,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2023년 초여름, 현기영접기
- 소설 MD 김효선 (2023.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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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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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포인트 11,990소설/시/희곡 주간 15위
1104쪽128*188mm (B6)1104g
ISBN 9788936439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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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4·3을 입 밖으로 내는 게 금기시됐던 군부독재 시절, 무고한 양민들이 학살된 4·3의 진실을 담은 「순이 삼촌」을 발표하면서 제주 4·3의 비극을 널리 알린 소설가 현기영. 그가 제주와 한반도 현대사의 뿌리가 담긴 필생의 역작 『제주도우다』를 선보인다.
4·3의 비극으로부터 살아남은 자 안창세의 목소리로 젊은 세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제주도우다』는 일제강점기부터 4·3에 이르기까지, 현재 한국사회 갈등 지형의 연원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제주의 근현대사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총체적으로 다룬 대하소설로, 역사적 비극을 끈질기고도 강렬한 필력으로 보여준다.
힘 있는 서사와 생생한 인물들을 통해 압도적인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이 작품은 새 나라 건설의 꿈에 벅찼던 해방공간의 열망과 좌절을 그리는 한편 국가의 폭력에 내몰려 희생당한 수많은 사람들을 진혼한다. 인간의 본질을 되묻게 하는 가공할 폭력과 나란히 제주의 땅과 바다, 사람들의 아름다움이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매끄러운 문장 속에 빛난다.
목차
1권) 프롤로그 / 1부 / 2부
2권) 3부 / 4부
3권) 5부 / 6부 / 7부 / 에필로그 / 작가의 말
책속에서
P.133
밝은 미래가 바로 눈앞에 있으니, 이제 그 미래를 향한 행동만이 남은 듯이 여겨졌다. 지금이 바로 그 미래, 새 나라, 새 시대의 위대한 전야였다. 식민지 생활 속에서 애국심이 뭔지 몰랐던 그들이었다. 이제 그들은 온몸으로 깨달았다. 자기 나라를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몸 바쳐 사랑할 나라를 갖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2권 133쪽)
추천글
한겨레 신문: 한겨레 신문 2023년 6월 29일자
국민일보: 국민일보 2023년 6월 30일자 더보기
저자 소개
지은이: 현기영 저자파일 신간알리미 신청
최근작 : <제주도우다 1~3 세트 - 전3권>,<제주도우다 3>,<제주도우다 2> … 총 66종 (모두보기)
1941년 제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7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아버지」가 당선되어 창작활동을 시작한 이래, 제주도 현대사의 비극과 자연 속 인간의 삶을 깊이 있게 성찰하는 작품을 선보여왔다. 소설집 『순이 삼촌』 『아스팔트』 『마지막 테우리』, 장편소설 『변방에 우짖는 새』 『바람 타는 섬』 『지상에 숟가락 하나』 『누란』, 산문집 『바다와 술잔』 『젊은 대지를 위하여』 『소설가는 늙지 않는다』 등이 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과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을 역임했으며, 만해문학상 신동엽문학상 오영수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등을 받았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지금 우리 앞에 당도한 최고의 역사소설 『순이 삼촌』 작가 현기영의 필생을 건 대작 유홍준 이창동 도종환 정지아 강요배 박태균 최태성 추천! 4·3을 입 밖으로 내는 게 금기시됐던 군부독재 시절, 무고한 양민들이 학살된 4·3의 진실을 담은 「순이 삼촌」을 발표하면서 제주 4·3의 비극을 널리 알린 소설가 현기영. 그가 제주와 한반도 현대사의 뿌리가 담긴 필생의 역작 『제주도우다』를 선보인다. 4·3의 비극으로부터 살아남은 자 안창세의 목소리로 젊은 세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제주도우다』는 일제강점기부터 4·3에 이르기까지, 현재 한국사회 갈등 지형의 연원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제주의 근현대사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총체적으로 다룬 대하소설로, 역사적 비극을 끈질기고도 강렬한 필력으로 보여준다. 힘 있는 서사와 생생한 인물들을 통해 압도적인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이 작품은 새 나라 건설의 꿈에 벅찼던 해방공간의 열망과 좌절을 그리는 한편 국가의 폭력에 내몰려 희생당한 수많은 사람들을 진혼한다. 인간의 본질을 되묻게 하는 가공할 폭력과 나란히 제주의 땅과 바다, 사람들의 아름다움이 작가 특유의 섬세하고 매끄러운 문장 속에 빛난다. 갈등과 혐오로 점철된 이 시대 우리에게 도착한 『제주도우다』는 경종을 울리는 진중한 메시지와 함께 한국문학의 기념비적 성과로 기억될 최고의 역사소설이 될 것이다. 제주, 그리고 한반도에 어린 격동과 파란의 역사 『제주도우다』는 태평양전쟁 발발 후 일제의 압박이 극에 달하던 1943년부터 4·3사건이 발생하고 토벌이 이루어진 1948년 겨울까지를 주요 시간대로, 역사 이래 육지의 지배권력에 거세게 맞서 역향(逆鄕)이란 별명을 얻은 제주의 해변 마을 조천리를 주요 공간으로 삼는다. 열한살 소년 안창세가 열여섯살이 되는 이 5년은 한국현대사의 최대 격변기로, 조천리 사람들은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의 착취에, 해방 후에는 단독정부 수립 책동과 미군정의 폭압에 맞서 싸운다. 체제와 권력을 상대로 한 개인들의 싸움에서 승패는 자명했다. 『제주도우다』는 그 결과만을 향하지 않고, 그렇게 나설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잔인한 학살, 참혹한 비극이라는 상투적 표현으로 담아낼 수 없었던, 꿈틀거리는 사람의 형상을 부여한다. 『제주도우다』에 등장하는 사건과 사실은 더러 알려진 것들이지만, 소설은 낯익은 사실 너머에서 살아 있는 인간의 손을 내민다. 하루하루 성실히 노동하고 저녁이면 동네 친구들과 모여 시답잖은 이야기 속에 술추렴을 하는 사람들, 고된 살림과 물질을 한 몸으로 해내면서도 씩씩함을 잃지 않는 해녀들, 바람에 물결치는 초원에서 흥얼거림 같은 노래로 말떼를 모는 테우리들…… 이들이 또한 차별과 억압을 공기처럼 숨 쉬며 노역에 시달리고 이유 없이 채찍질을 당한 사람들이고, 체포와 고문을 피해 마루 밑에 몸을 숨긴 사람들이었다. 이들에게 항일은 제 몸처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일본이 망한다는 소문이 돌다 어느 날 갑자기 해방이 선포되었을 때, 이들은 이후에 어떤 역사와 마주하게 될지 알지 못했다. ‘해방’이 과연 무엇일까? (…) 우선 등교할 때마다 등을 짓누르던 그 무거운 짐이 사라진 것이다. 다섯장 뗏장의 무게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너무도 놀랍고 기뻤다. 압박과 해방! 온몸을, 등을 짓누르던 그 무게가 압박이고, 그것이 사라져 몸과 마음이 날아갈 듯이 가볍고 홀가분해진 지금의 상태가 바로 해방인가보다고 창세는 생각했다.(1권 233면) 좋은 세상을 향한 뜨거운 열망과 좌절 노인이 된 창세의 회고담 형식을 띠고 있지만 『제주도우다』에서 사건을 이끌어가는 것은 해방공간의 청년들이다. 무정부주의, 공산주의, 민주주의, 우파 민족주의 등 다양한 사상적 경향에 대한 이해는 소박하지만 독립된 새 나라, 더 좋은 세상에 대한 열망만은 가슴을 태울 듯이 뜨겁다. 이들에게 해방공간은 일제를 물리쳐준 ‘좋은 나라’로 환영했던 미국이 “해방군이 아니라 훼방꾼”(2권 162면)임을 깨닫고, 가공할 고문과 폭력, 죽임에 못 이겨 입산을 “지상명령처럼”(3권 76면) 받아들이게 되는 시간이다. 가진 것은 폭력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뿐 총도 거의 없이 죽창을 든 이들은 막상 4·3의 봉화가 올라 지서를 습격하고도 전투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다. 이들 산부대는 “미숙함을 극복하기 위해 맹렬히 유격훈련을”(3권 85면) 하지만, 단독정부 수립 이후 더욱 잔혹해진 마구잡이 체포와 고문으로 민심이 돌아서고 마을의 지원이 끊기면서 고립된다.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이들은 “각자 결정하고 각자 싸우고 각자 죽”(3권 120면)어간다. 동굴 속 친구 곁에 남아 함께 굶어 죽거나, 혹은 토벌대의 총에 죽은 친구의 눈을 감겨준 뒤 하산의 길을 택한다. 살아남은 이들은 말한다. “우린 그때 살아도 살아 있는 걸로 생각 못 했어. 하늘로도 도망 못 가고, 땅으로도 도망갈 데가 없었주.”(1권 17면) 『제주도우다』는 이들의 싸움을 서술하면서 나란히 토벌대의 폭력을 나열한다. 다양한 증언과 취재를 바탕으로 한 이 폭력의 기록은 언어로 표현되었으나 인간의 언어를 넘어서는 것이다. 작가 현기영이 1978년 「순이 삼촌」을 통해 최초로 발화한 이 참상은 『제주도우다』에서 건조한 문장에 담겨 몇페이지씩 이어지면서 인간의 무력과 잔인을 곱씹게 하는 동시에 그것을 견뎌 살아낸 힘을 생각하게 한다. 광기에 사로잡힌 살육의 현장에서 희귀하게 발견되는 인정의 손길에 마지막 희망을 부여잡게 만든다. 자유자재의 파격, 자연이 써낸 문장 바닥없는 폭력의 한편에서 제주의 자연과 풍습은 더할 나위 없이 정겹고 아름답다. 달리기를 잘하는 창세가 배달 배낭을 메고 바닷가를 달릴 때 펼쳐지는 끝없는 하늘과 바다, 흰 파도 위 통통배들의 풍광은 손에 잡힐 듯하고, 외삼촌 양산도가 “어려려려허 허허러러” 말 모는 소리를 하며 말떼와 거니는 초원은 지금 코끝에 풀 냄새가 끼쳐오는 듯하다. 물질을 마치고 불턱에 모여 몸을 녹이는 해녀들의 왁자한 웃음소리가 생생하다. 소설 도처에서 마주할 수 있는 제주의 땅과 바다와 사람들을 새겨넣은 묘사는 최근 한국문학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고전적인 문장의 품격을 보여주면서 이들에 대한 작가의 깊은 애정을 느끼게 한다. 자연과 사람, 격동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형상화하기 위해 『제주도우다』는 글로 된 모든 장르를 동원해 파격을 가한다. 군데군데 인용한 전설과 설화는 제주의 역사, 제주 땅과 바다가 키운 사람들의 기질을 옛이야기의 재미로 들려준다. 또한 시와 희곡, 판소리 사설, 무당의 넋두리, 신문 기사, 격문, 구호, 노동요와 유행가, 저항가 가사 등을 자유자재로 활용해 대목마다 집약적으로 실감을 전달한다. 앞 문장의 끝이 뒤 문장의 머리가 되면서 물처럼 이어지는 문장이 생동하는 이야기의 힘을 보여준다. 그때 그곳에서 사람들은 일하고, 노래하고, 사랑하고, 소리 높여 외치며 싸웠다. 그들이 오늘 우리 앞에 다가온다. 스스로 “제주 4·3의 영령을 진혼하는 무당”이라 말하는 작가 현기영. 그가 등단 50년을 바라보는 문학 여정에 세운 이 우뚝한 이정표는 그 자체로 장대한 위령제를 지낸 듯하다. 이 작품은 한국문학사를 넘어 한국현대사에 거대한 족적을 남기게 될 것이다. 그로써 이제 우리는 제주 4·3을 더 당당히 이야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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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 2023-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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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한 달 전 정도에 유시민의 알릴레오 북스에 현기영 작가님이 나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쁜 마음으로 방송을 기다리고 청취하였는데, 학창 시절 작가님의 순이삼촌이나 변방에 우짖는 새를 무척 인상적으로 읽었기 때문이다. 내 경우는 변방에 우짖는 새를 더 좋아했는데 순이삼촌은 단편으로 일상의 단면을 통해 43항쟁의 비극을 전달한 반면, 변방에 우짖는 새는 장편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기승전결의 꽉 채워진 이야기를 선사했기 때문이다. 순이 삼촌을 통해 4.3항쟁을 알게 되고 그 이후로 방송이나 언론을 통해 사건의 발단 등은 듣기는 했지만 사건 전반에 대한 내용은 잘 몰랐던 것 같다. 다만 엄청난 인명이 희생되었다는 사실 이외에는.현기영 작가님이 출연하신 방송 말미에 작가님의 새로운 소설이 출간된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대하였고 마침내 읽게 되었는데 3권이라는 분량으로 4.3항쟁의 진실을 담은 대 작품이었다.제주도로 가족 여행을 갈 때 아이가 역사를 좋아해서 삼별초의 몽고 항전지나 4.3 평화공원을 찾아가기는 했지만, 4.3 항쟁이 발생한 곳의 실제 지명은 정작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최근에 업무 출장으로 제주도를 왕래하면서 접한 지명이 조천리, 함덕리가 그 역사의 현장인 것을 알게 되었고, 역사의 비극이 일어난 곳과 가까운 곳이 업무와 연관이 있는 곳임을 알게 되었다. 또한, 제주도에서 진행된 학회 참석을 하면서 숙박한 호텔 맞은 편에 있던 관덕정과 그 부근이 4.3 항쟁의 발단이 된 3.1 기념행사 장소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름 역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지명에 너무 무심했던 것 같다. 게다가 관덕정은 변방의 우짖는 새의 배경이 되는 이재수의 난에도 등장하는 곳이기도 했다.소설은 3인칭이면서 전지적 작가 시점이긴 한데 일반적으로 접한 소설들보다는 책을 읽는 독자와 소설 속 인물 간의 거리가 조금 먼 느낌이 있었다. (먼 발치에서 이야기의 흐름을 보는 느낌이랄까?) 작가가 의도했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독자와 등장인물과의 거리가 있어서 이야기 속의 비극이 어느 정도는 무르게 하는 역할을 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너무나 가슴이 아파 적어도 2~3달은 견디기 힘들었을 것 같다. 현기영 작가님의 거의 모든 작품은 제주도의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는데, 결국 본격적으로 4.3항쟁을 다룬 이 작품을 발표하신 것을 보면 그 분의 운명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이야기는 해방의 기쁨을 맞이한 순수한 제주도민들이 새로운 조국에 대한 희망을 제대로 키워보기도 전에 소위 해방군이라는 미군의 정책과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이라는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정치 일정이 진행됨에 따라, 순수하게 이념이 아닌 민족을 우선으로 하는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하던 제주도민들이 어느 순간부터 폭도로 몰리고, 과잉진압에 항의하면서 산 속에 들어가게 되면서 투쟁하게 도는 모습을 다루고 있다. 전 3권으로 이루어진 이야기 중 1권은 등장인물들이 얼마나 조국의 해방을 기다렸고 기뻐했던 순박한 사람들이었나 모사하고 있다. 이어지는 2-3부에서는 이러한 제주도민들의 순수한 의견 표현을 억압의 대상으로 만 본 미군정이나 한국 관리들로 인하여 과잉 진압과 이에 따른 무력 충돌로 걷잡을 수 없는 비극으로 치닫는 모습을 보여준다.소설에서 다루는 비극적인 장면 장면은 그리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것만은 꼭 이야기하여야 한다고 생각되는데, 한 국가, 한 민족 내부의 갈등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잔인하고 참혹했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야기의 비극성과 별개로, 소설을 읽으면서 이 비극이 발생한 원인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데, 가장 큰 원인이 미군정이 우리 국민들을 해방을 성취한 민족으로 보지 않았던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들의 관리 편의를 위해 기존 일제 관리, 군경을 그대로 쓴 것을 보면,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은 일본과의 전쟁에서 미군이 승리한 것은 맞지만, 우리는 아군이 아니라 전쟁 결과에 따른 전리품이었을 뿐이었던 것 같다.반면 우리는 그 점은 생각하지 못하고 해방된 민족으로 꿈에 부풀어 있었던 것 같다. 또한 미군뿐만 아니라 육지에서 온 한국 관리나 군경들의 태도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을 보면, 해방된 우리나라에 대한 생각이 너무나도 달랐던 것 같다는 느낌이 들고, 어쩌면 지금까지도 이러한 사람들의 생각의 차이는 우리 국민들 속에 뿌리 깊게 남아 있는 것 같다. 또한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는 분명하지는 않지만 서로의 마음 속에 너무나 강한 증오의 마음이 타오르고 있었던 것이 비극의 원인이라고 생각되는데, 이 역시 현재까지 남아 있으면서 국민들의 단결을 막고 있는 것 같다. 즉, 우리 내부적으로 시민 혁명과 조국 독립을 이루지 못하고 해방을 맞은 부채가 너무 커서 4.3을 비롯한 6.25, 광주의 비극을 거치고도 아직 남아 있는 것이리라.결국, 4.3항쟁에 대한 진실과 비극에 대해 올바로 아는 것이 이러한 차이를 없애는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현기영 작가님의 새 작품 제주도우다가 이러한 생각의 골을 메워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많은 분들의 일독을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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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 2023-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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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북도 아니고 남도 아니고, 제주도다!
『제주도우다』 1권, p.297
해방 후 일본에서 귀향길에 오른 제주민에게 미군이 물었다. 북조선으로 가겠느냐, 남조선으로 가겠느냐. 전쟁 중 살아남기에 급급해 조국의 상황을 몰랐던 사람들은 "북조선은 뭐고, 남조선은 뭐냐"고 반문했다. 그리고 결정했다. "북도 남도 아닌 제주도로 가겠다"고.
제주도는 이질적인 환경 때문에 육지와는 다른 역사적 상황에 종종 처했다. 육지에서 구할 수 없는 특산물을 공물로 수탈당했고 빼앗기다 못해 탈출하려는 주민을 묶어두기 위해 이 백년 동안 출륙금지령이 내려졌다. 육지에서 떨어진 섬은 조선 시대에는 유배지로 일제강점기와 미군정 시기에는 군사기지로 이용됐다. 한라산 자락의 조붓한 농토와 바다에 의지해 살아온 제주민은 고립된 지리적 특성때문에 역사적 격변기를 더 혹독하게 겪었다. 작가 현기영은 제주가 겪은 이러한 고난의 역사를 소설 『제주도우다』에 형상화했다.
제주 출신의 현기영 작가는 공식 역사가 덮어왔던 섬의 실상을 꾸준히 밝혀왔다. 소설집 『순이삼촌』을 비롯한 그의 작품들은 4·3항쟁과 제주 현대사의 이면을 파고들었다. 「순이삼촌」을 출판한 후에는 독재 정부에게 고문당하고 금서로 지정되는 고초를 겪었다. 당시의 권력자가 30년의 비행을 감추고자 한 일이었다. 작가이기 이전에 제주민이었던 현기영이 당한 상황은 1940년대가 여전히 실재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작가는 제주가 헤쳐온 환난을 소설 『제주도우다』에서 "압박과 착취와 기만과 강요"의 역사로 표현했다. 그런데 소설 속 그 세월은 과거가 아니다. 현재도 굳건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 2016년 제주4·3정립 연구·유족회는 제주 각지에 추모·표지석을 세웠다. 추모 표지석 내용을 눈여겨보면 모골이 송연해질 표현이 보인다. "이곳 세화리 1452-3번지는 4·3 당시 제1구(제주) 경찰서 세화지서 옛터이다. 1948년 4월 3일 오전 2시 무장폭도 40여명이 세화지서를 습격했다." 여기서 '무장폭도'로 지칭된 사람들은 누굴까. 제주 역사를 모르는 사람이 이 표지석을 본다면 그 사람은 '4·3'과 경찰서를 점거한 '폭도'를 어떻게 기억하게 될까. 2023년 제주에는 아직 남과 북으로 우와 좌로 나뉘었던 시간이 흐르고 있다.
『제주도우다』는 선문대할망의 전설부터 1950년대까지 제주의 역사를 그린다. 노년에 이른 작가 현기영은 자신이 나고 자랐으며 작품활동의 근원이 된 제주의 총체를 하나의 소설에 담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간 장편, 중단편 소설을 출간하며 꾸준히 알렸던 제주와 4·3이 『제주도우다』에 망라돼있다.
소설은 다큐멘터리 필름 제작자 부부 임창근과 안영미가 4·3항쟁을 다룬 장편 다큐 기획에서 시작한다. 제주 출신인 안영미에게는 4·3항쟁에 가담했던 할아버지 안창세가 있었고 다큐는 그의 증언을 바탕으로 할 예정이었다. 안창세는 참사의 와중에 "누나와 외삼촌을 한꺼번에 잃었고 그 자신도 죽음의 문턱 바로 앞까지 끌려갔었다." 그는 평생을 "그 사건에 영혼이 붙들린 채" 고립된 삶을 살았다. 손녀 부부의 청에도 안창세는 끝까지 입을 다물려했다. 아무도 자신을 믿어주지 않으리라는 절망감때문이었다.
"(…) 그건 천하 인간 세상에 없던 일이여. 바로 지옥이주, 지옥! 아무리 내가 말해주어도 느네들은 당최 모른다게. 당해보지 못한 너네들이 어떵 그 엄청난 걸 이해할 것고. 모르고서는 좋은 영화 못 말들주. 엉터리밖에 못 만들어."
할아버지의 말 속에는 그때 그 사태를 겪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설명해줘도 결코 그 참상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깊은 단절감이 있었다.
『제주도우다』 1권, p.17
안창세의 일생이 "영미야, 창근아"로 시작하는 이야기로 풀려나오기 시작했다. 이야기에는 제주도의 기원과 역사가 스며있다. 선문대 할망 설화, 고려 시대 복속, 조선 시대의 수탈과 민란, 기미년 3·1 만세운동이 이어진다. 제주는 혹독한 일본의 착취를 벗어나기 위해 투쟁했고 혹독한 탄압을 받았다. 항일 시위를 조직했던 활동가들이 모진 고문과 옥고를 치렀다. 어린 창세와 누이 만옥은 항일 투쟁 회오리 속에 비밀 야학을 다니며 배움을 계속했다.
사람은 그 산천을 닮는다고 했거니와, 그들을 가난하제 만든 화산섬의 척박한 풍토는 그들의 심성을 거칠게 만들기도 했다. (…) 게다가 그곳 선비들 중 상당수는 유배객과 망명객의 후손이었으니 그들의 핏속에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분노의 씨앗이 감춰져 있기도 했을 것이다. 출륙 금지에 의한 이백년간의 유폐 생활이 그러한 심성을 더욱 조장했을 것이다. 그 선비들은 교활을 싫어하고 단순명료를 좋아해서 어떤 일이 옳다고 생각하면 주저 없이 받아들이고 목숨까지 바치기도 했다. 관권의 침학이 더이상 견딜 수 없어 민란이 일어났을 때, 몸 바쳐 무리를 이끄는 장도(將頭)들이 바로 그들 중에서 나왔다.
『제주도우다』 1권, p.43
창세의 아버지는 바다에서 죽었다. 남매의 어머니는 일본에서 배워온 재봉질로 끼니를 이었다. 섬 사람들의 생활은 칠만 관동군이 제주에 주둔하면서 "삶이 아닌 삶"이 됐다. 섬주민 전체가 전쟁 준비에 강제로 투입됐고 물자란 물자, 낱알 한 톨까지 징발당했다. 어린 창세도 잔뜨르 비행장 활주로 공사에 끌려간다. 작가는 서사 곳곳에 당시 불렸던 노래 가사를 넣었다. 이야기에 녹아든 유행가, 군가, 동요 등은 문화사 자료같이 보여 작품에 현실감을 불어넣었다.
한라산 곧은 나무는 전신주로 다 나가고
보리깨나 거둘 밭은 비행장으로 다 나가고
말깨나 하는 놈은 감옥소로 다 나가고
아기깨나 낳을 년은 정신대로 다 나가고
힘깨나 쓸 사내 놈은 강제 노력에 다 나가니
도대체 이놈의 종노릇이 웬말이냐
『제주도우다』 1권, p.101
일왕의 항복 후 섬은 자유의 희망으로 가득찼다. 주민들은 빠른 시간 안에 인민위원회를 구성하고 차치에 나섰다. 그러나 미군이 섬에 들어오기까지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갔다. 미군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세운 조직을 인정하지 않았고 심지어 아직 섬에서 철수하지 않은 일본 관동군이 치안을 담당하게 했다. 미군이 주둔한 다음의 형세는 점입가경이었다. 주민들의 민주적인 조직 인민위원회를 해산하고 인력부족을 이유로 친일세력을 재등용했다. 미군은 주민들을 구경거리 삼았고 민간인 살상도 서슴지 않은데다 일제때와 같은 수탈이 다시 시작됐다. 제주민에겐 일제나 미군정의 지배가 다르지 않았다.
3권으로 이뤄진 소설의 1권은 미군정의 본색이 드러나고 해방 후 잠시 찾아왔던 자유의 분위기에 암운이 닥치는 1부와 2부를 다룬다. 시기로는 1945년까지. 2권 3부에서는 도민들의 귀환과 반미 시위, 충남부대, 서북청년단 등 육지 토벌 부대 입도, 단독선거 반대 시위로 위기감이 고조되는 1948년 초까지의 상황을 그린다.
맥아더는 일본 경제의 안정을 위해 조선인의 은행 잔고를 동결시켰다. 해방 후 귀국하려는 섬주민은 빈털털이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 수가 7만. 섬의 빈곤은 갈 수록 정도를 더했다. 미군의 폭정을 견디는 제주민은 남과 북을 나눠 통치하고 각각의 정부를 세우겠다는 결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시위는 갈 수록 고조됐고 폭력 진압을 위한 토벌대가 투입됐다. 서북청년단의 등장이다. 북한에서 공산당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혈혈단신 남으로 내려온 청년들을 기독교 단체에서 거뒀고 이들이 폭력조직 서북청년단의 모태가 됐다. 공산당에 대한 피맺힌 원한을 제주 학살로 해소한 이들은 종교의 품 안으로 돌아가 신분을 세탁하고 선량은 국민이 됐다.
밑도 끝도 없는 동족의 학대를 마주한 섬 사람들은 분열하기 시작했다. 이념을 선택한 이는 삶을 선택한 사람을 뒤로하고 산으로 들어갔다.
그리하여 오랫동안 뜨거운 열정으로 뭉쳐 있던 결속과 믿음에 공포와 불신의 기류가 밀려들었다. 해방 후 지금까지 좌우 개념 없이 함께 생각하고 함께 행동해오던 공동체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탈자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전향자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으니, 상당수가 대청과 학련에 가입했다.
『제주도우다』 2권, p.307
3권 4부는 1948년 4·3봉기 직전과 직후를 그린다. 3월 6일 조천중학원 자치회 회장 김용철 조천 지서 사망 사건이 원인이 되었다. 스스로를 '인민자위대'라 칭한 입산 청년들은 4월 3일 봉화를 올리고 "일제히 경찰지서들을 습격했다."
4월 3일에 산부대가 공격한 곳은 스물네개 경찰지서 가운데 고문이 심했던 열한개 지서, 그리고 경찰 후원회 간부, 대청 간부 들과 그 가족들이었다. 사망자는 민간인 여덟명, 경찰 네명, 산군 두명이었다.
『제주도우다』 3권, p.25
토벌 명령을 받았던 9연대 연대장 김익렬과 산부대 군사총책 김달삼은 무익한 전투를 피해 평화협상에 나섰다. 그 사이 시간을 번 미군정은 전열을 정비해 무력 진압에 나섰다. 온건파 연대장을 전출시키고 서청 인원을 대거 파견했다. 5·10단독 선거를 막으려는 제주의 투쟁은 필사적이었다. 5·10선거 보이콧으로 토벌 작전은 더욱 격화됐고 입산자는 갈 수록 늘었다. 토벌대는 말도 안되는 이유를 들어 사람들을 잡아들였고 고문했다. 행방불명이 속출했다. 안창세는 그 때를 회상다.
잡히면 무조건 죽도록 때렸주. 형편없이 두들겨 패니 살 수가 없어. (…) 그러니 입산할 수밖에. 그 사람들이 뭐 사상이 있거나 특별히 애국심이 많아서가 아니고 그냥 매 안 맞으려고 입산한 거라.
『제주도우다』 3권, p.57
항쟁의 거대한 불꽃은 이제 급격히 그 생명력을 잃고 있었다. 살기 위해선 굴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공포가 사람들을 똘똘 뭉치게 하더니, 절망적 상황이 된 지금에는 공포가 사람들을 갈라놓았다. 군경 토벌대의 무자비한 파괴 공작은 그때까지 한 몸 같았던 도민 공동체를 두쪽으로 찢어놓았다. 두쪽으로 분리되었을 뿐만 아니라 서로 적대관계가 되도록 내몰렸. 모든 사람이 좌냐 우냐, 산이냐 해변이냐, 철저하게 이분법적으로 찢겨나갔다. 저항 세력을 산부대, 산군 혹은 산사람이라고 부르던 것이 토벌대가 시키는대로 차츰 폭도 혹은 산폭도로 변해갔다. 폭도 놈, 폭도 년을 흔히 불렀다. 처음에는 차마 그 말을 입에 담지 못했으나 그렇게 불러야 살길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산사람은 이제 두렵고 낯선 대상이 되었다.
『제주도우다』 3권, pp.69-70
소설의 5부는 1948년 10월 여순사건에서 시작한다. 제주 파병을 거부한 이 사건으로 산부대는 한 때 고무되지만 토벌대들은 남자만 보면 총질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토벌은 해안에서 산쪽으로 일정하게 진행됐다. 산군을 지원하지 못하게 소개된 산마을은 불태워졌고 마을에 남은 사람은 학살됐다. 학살의 이유따윈 없었다. 살아있는 생명은 모두 시체가 됐다. 토벌대의 초토화 작전은 산부대의 전력을 무화시켰다. 마을은 잿더미가 되고 이웃과 가족은 처형돼 시체로 나뒹굴었다. 산군은 공포에 빠진 주민 누구에게도 도움을 받을 수 없어 굶주림 속에 하나둘 죽어갔다.
산군과 마을의 연락병 역할을 하다 입산한 창세는 토벌대의 공격에서 살아남아 투항했다. 혹독한 고문을 견딘 끝에 석방된 그에겐 산에 남은 스승이 준 만년필이 있었다. 살아남아 겪은 모든 일을 글로 쓰라던 스승의 당부는 지켜지지 못했다. 안창세에게 4·3의 기억은 결코 떨칠 수 없는 것이었다.
도대체 우리가 잘못한 게 뭔가. 무얼 잘못했단 말인가. 아아, 우리의 죽음이 아무 보람도, 아무 가치도 없는 죽음이 되어버렸어. 그것이 원통해! 도대체 이건 인간의 죽음이 아니여. 짐승의 죽음이라도 이런 떼죽음은 없어. 너무 억울해, 원통하고 절통해! 우린 결코, 우린 결코 죽어도 죽지 않을 거여! 너무도 원통해 죽어도 죽을 수 없어!
『제주도우다』 3권, p.265
소설 마지막 대목의 문장은 핏물과 한탄에 잠긴 듯했다. 안창세의 목소리는 죽음과 죽음과 죽음, 끝없는 죽음을 전한다. 청년의 죽음, 촌민의 죽음, 할아버지와 손자의 죽음, 형제의 죽음, 젊은 부부의 죽음, 젊은 아낙의 죽음, 노파의 죽음,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죽음, 엄마와 아기의 죽음……
작가는 4·3의 참상 속에도 삶이 있음을, 그 풍경을 받치는 섬의 모습을 아름답게 묘사했다. 투쟁 가운데 사랑을 꽃피었고 연을 맺었으며 아이가 탄생했다. 산군은 토벌대의 엄중한 감시를 뚫고 밤을 도와 아내와 재회하고 밭의 곡식을 베었다. 한라산 중산간의 말 목장에서 어린 말을 길들이는 순간을 그리는 대목과 원정 물질에 나서는 해녀들의 삶을 묘사하는 부분은 작가의 경험이 없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4·3의 시간을 산 생존자들이 아직 살아 있다. 그럼에도 어느 한쪽이 다른 일방을 '폭도'라 지칭하는 표지석을 세우는 일이 가능하다. 집단 학살에 가담한 자들이 피해자인 양한다. 표지석을 묵과하는 마음도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서로에게 총을 겨눴던 일을 생각하는 건 아닐지. 그런 가책 때문에, 같은 도민끼리 더 이상의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아 무지한 뻔뻔함을 견디는 건 아닐지.
작가 현기영은 『제주도우다』에서 통해 4·3을 탈이념화했다. 제주도민은 이념이나 사상때문에 투쟁에 나선 것이 아니다. 일제와 다르지 않은 미군정을 반대했고 사람을 빨갱이로만 보는 서북청년단과 토벌대의 폭거에서 목숨을 구하려했을 뿐이다. 민중을 수탈하고 독재 정부를 구성하기 위해 반대의 의견을 잠재워야 했던 쪽이 이념을 외피삼았다. 현기영의 『제주도우다』는 피 맺힌 민중의 목소리다. 아직도 붉고 붉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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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iesis 2023-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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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서, 안다고 생각한 역사를 새롭게 배우고 재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1978년 작인 <순이 삼춘>을 1990년대에 읽고 제주 4.3을 배웠습니다. 2023년에 다시 그의 작품 속에서 제주와 한반도를 만납니다. 책 세권에 제주섬이, 한라산이 담겨 왔습니다..................................................... 1권의 분량이 가장 많다. 70만자의 무게를 일부 맛볼 수 있는 오랜만의 대하소설이다. 5.18을 보내며 더 확실해졌지만, 역사를 부정하는 정권 덕분에, 살았던 시간은 어쨌든 모두 기록된 역사라고 고민 없이 내린 생각이 완전히 틀렸다는 걸 확실히 깨닫는다. “그 사건의 기억은 노인에게 불가항력의 절대적 존재였다. 그 사건에 대해 발설한다는 것은 반세기 넘도록 무서운 정치적 금기였고, 그것이 어느정도 풀린 지금에도 노인은 닫힌 입을 좀처럼 열려고 하지 않았다.” 희생자만이 아니라 생존자와 유가족과 관련된 모두에게도 무례한 생각이었다. 고작 수십 년 고작 백여 년, 기억하고 살아계신 분들도, 더 깊어지는 상처를 치료도 못하고 싸안고 사는 분들 생각을 서투르게 건성으로 하며 살았다.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못 다한 삶을 내가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이를 악물고 살았주. 그렇게 열심히 살려고 노력해도 이 세상을 절반밖에 못 산 것 같아. 절반을 4.3에 묶여 딴 세상에 살았으니.” 올 해 5.18을 보내며, 10.29. 4.16, 제주4.3, 일제강점기... 역사는 그렇게 이어지며 권력들의 속성과 희생자를 만드는 패턴과 마땅히 존재해야할 공권력의 부재로 인한 희생을 한 줄기 흐름처럼 다시 가르쳐주었다. 이 책은 제주의 신화로 시작하는 제주의 역사이자 한반도의 역사일 것이다. 배워도 부족한 한국 근현대사를 제대로 배워보지 못한 누구에게라도 식민지와 근대의 촉발과 이후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어 현재 내가 선 이 자리까지 데려다 줄 것이다. “글을 쓸 수가 없었어. 먼저 그 참사에 대해서 쓰지 않고서는 다른 글을 쓸 수가 없다는 걸 깨달은 거라! (...) 모든 것이 헛것이고 그 사건만이 진실인데, 그 이야기를 써야 하는데, 그건 당최 무서워서 엄두가 안 나는 일이었던 거다……” 여러 해 전 친구의 지인이 티베트여행에서 돌아와 제주 중산간에 게스트하우스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핑계 삼아 친구와 함께 제주로 향했다.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처음 묵은 중산간의 나무집은 틈마다 산바람이 들락거렸고, 머무는 이들의 소리가 들렸다. 숲 길 산책을 다니면 산 사람보다 봉분이 더 많이 보였다. 헛것을 본 것인지 어둑한 집을 만났는데, 커피도 팔고 술도 판다고 했지만, 술장고를 보여준 주인은 곧 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타 연주를 했으며, 우린 불청객처럼 앞뜰 의자에 앉아 직접 꺼낸 맥주를 테이블에 올려두고 마시며 해질 때까지 얘기하고 스케치를 했다. 이틀 후에는 어떤 소문이 났는지 일면식도 없는 동네분들이 찾아와 초등학교에서 공연을 한다고 같이 보러 가자했다. 제주 말로 펼쳐진 공연 내용은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제주방송에서 요청한 인터뷰까지 했다. 그때 만난 분들을 다시 이 작품에서 뵙는 듯하다. 그때는 몰랐던 사정 이야기를 이렇게 글로 듣는 듯하다. ‘그 사건’으로 인해 꿈도 말도 잊고 잃고 산 세월 속에서 제주는 휴양 관광지와 특산물을 관리하고 생산하는 육지인들의 서비스 공급지로 살아왔다. 눈물을 닦으며 프롤로그를 읽고 물도 안 마시고 1부, 2부를 읽었다. 해가 밝게 들이치다 가려지는 동안 시선의 뿌리가 책에 박힌 듯 고개를 들어올리기가 무거웠다. 읽기의 즐거움도 잊고 책장만 넘겼다. “화나지 않았는데도 화난 것처럼 큰 소리로 말하고, 툭툭 말을 토막 쳐 거칠게 내뱉는 사람들. 거친 땅, 거센 바람의 풍토가 그렇게 만들어놓았을 것이다. 바람을 뚫고도 들리도록 목소리가 높고, 바람에 말끝이 날아가지 않게 연결어미가 축소되었을 것이다.” 제주의 언어와 문화에 대해 아는 바가 좀 더 많았다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누가 실존 인물이고 허구인지 다 분간할 수 없지만, 저자가 관련 사료를 대량 조사/참고하셨다는 느낌을 받는다. 작품 설정처럼 현실에서도 증언을 바탕으로 하는 다큐멘터리 작업이 새롭게 시작되면 좋겠다. “그건 천하 인간 세상에 없던 일이여. 바로 지옥이주, 지옥! 아무리 내가 말해주어도 느네들은 당최 모른다게. 당해보지 못한 너네들이 어떵 그 엄청난 걸 이해할 것고. 모르고서는 좋은 영화 못 만들주.” ‘해방’이 되었다. 길고 긴 강점기를 벗어난 사람들의 기쁨과 희망이 아프도록 활기차다. 이름도 찾고 땅도 찾고 문화도 신(神)도 찾는다. 제주하르방 말고 제주풍신 영등할망을 알게 되어 기쁘다. 돌아오지 못한 이들도 많지만 살아남은 이들이 만끽할 환희의 날들이 계속되면 얼마나 좋을까. 후대에 태어난 탓에 역사를 조금 안다는 것이 한 장씩 넘길 때마다 서글펐다. 해방의 감격으로 새 학교들을 많이 만들고, 배워서 알아서 힘을 키워 살아야한다고 믿었다. “망각을 강요당했던 제 나라 역사를 되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모두가 가슴에 새기고 있었다.” 소설인데 논픽션처럼 읽고 있는 독자로서의 내 태도를 스스로 경계하려 하지만 멀지 않은, 현재도 일면 진행 중인 역사라 필요한 거리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미군정이 친일파를 고용한 것, 잠시 숨죽이던 친일파들이 제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분풀이를 시작한 것, 자국의 이익만을 우선하는 국제정세와 외교의 계산법을 모르고 해방군으로 오인한 것, “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말고, 조선 사람 조심하자!”란 문장은 나도 어릴 적에 조부모님 이야기 속에서 듣던 내용이다. 제목은 짐작한 것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었다. 독립국 탐라 제주가 육지의 왕조에 복속되고 나서, 여러 차별을 당하면서도 잊지 않던 자치공동체의 정신이었다. 집중된 권력의 부침에서 자유롭게 우리끼리 평화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육지의 샘은 지상으로 흐르나 제주의 샘은 지하로 흘러 용천하는 것처럼 도저히 흐르던. “우린 남도 아니고 북도 아니고 제주도우다.” 불안한 정세에 더해 재난이 겹쳐오는 상황은 소설의 배경이자 역사적 사실이었을 것이다. 사람의 마음도 메마르게 한 육십육일간의 가뭄, 땅도 바다도 가물었다. 기아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모진 흉년을 만나 굶주리며 “해방이 곧 밥 먹여주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아야 했다.” 무역 통제, 터무니없이 비싼 관세, 친일파와 떨거지들이 다 차지한 일자리, 호열자(콜레라) 내습. “친일파 세상이 되어부렀어. 말깨나 할 만한 젊은 놈들은 허구한 날 쫄쫄 굶어 기운을 못 차리고 목소리를 못 내고 있으니! 이래 갖고 나라가 제대로 건국이 되겠나?” “기근과 역병, 두 개의 재앙이 동시에 온 섬을 뒤덮었다.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혔다.” 경황이 없는 중에도 한반도 분단 프로젝트는 더 강력하게 추진되었다. 상상해보려했다. 국민을 살리는데 관심이 없는 정부, 매점매석과 부정부패로 인한 생필품 부족, 이미 정신을 차릴 수가 없는데 더 나아질 기미조차 없는 상황, 반겼던 해방은 모리배들의 것인지 친일파의 것인지 모를 정세... 이 책 속에 내가 안다고 생각한, 잘 모르던 생생한 세계가 있었다. 미군정이 3.1 운동 기념식 집회 허가를 내주지 않아 긴장과 반발이 고조되는 내용을 만나자 2023년에 목격한 참담한 3.1절 기념식이 떠올랐다. 보고 싶지 않았던 무차별 발포는 소설 속인 듯 현실인 듯 발생했고, 사람들이 죽었다. 해방된 조국과 희망한 미래는 “상상이 일으킨 열정이었고, (...) 불행히도 현실이 아니었음이 판명되었다.” 그리고 서북청년단을 대동하고 육지 인사인 극우주의자가 미군정에 의해 발탁되어 도지사로 제주에 들어왔다. ‘빨갱이’란 멸칭이 태어났고 호명만으로 사람을 죽였다. “좌우 가릴 것 없이 좀 똑똑해 보이는 청년은 무조건 남로당이고 빨갱이라고 했다.” 어디쯤에서 나는 장르도 시대도 다 잃었다. 지금도 금기어이자 사생결단을 낼 적을 가려내는 말, 빨갱이, 그리고 실체를 모를 “공산주의를 없애기 위해서는 어떠한 악마와도 손을 잡을 것이다”는 논리, 불과 며칠 전 비슷한 말을 한 목사의 소식을 기사 제목으로 얼핏 보았다. 이 시절의 호명은 지금과 그 의미가 다른가. 가려내어 단죄하고 처벌하겠다는 적으로 삼겠다는 태도는 유사하다. 거기엔 공화정도 민주정도 법치도 인권도 무엇도 고려되지 않는다. “해방은 그때 한달뿐이여.” 왈칵 오르는 눈물도 울컥 오르는 아픔도 지금은 삼킨다. 아직 3권이 남아 있다. 첫 장부터 읽기가 힘들었다. 작가가 그만큼 생생하게 어쩌면 증언을 옮기듯, 악랄한 폭력과 죽음과 슬픔으로는 다 표현 못할 충격과 분노와 그리고 깊은 슬픔을 담아 놓았다. 유가족도 친지도 아닌데 울분이 끓어오른다. 반성도 사과도 없는 자들, 저만 좋은 용서를 입에 올리는 자들, 모욕하고 왜곡하고 여전한 가해를 가하는 자들을 용서할 수가 없다. 언젠가 친구와 탄 택시에서 기사분은 도착할 때까지 원희룡이 얼마나 천재인지, 제주의 자랑인지를 얘기했다. 친분은 잘 모르지만, 변호하듯 설득하듯 끈질기게 육지방문객들에게 제주의 인물을 각인시키려는 이유가 무엇일지는 궁금했다. 인물의 평가와는 별개로, 그런 애씀에는 응축된 에너지가 느껴졌다. 아마 그걸 맺힌 한이라고 부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반드시 훌륭한 사회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믿었는데, 그러도록 예비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그가 경찰에 살해당하고 말았다! 그들의 대표자, 그들의 미래, 그들의 희망이 살해당했다!” 제주는 그렇게 자랑이 될, 사랑이 될, 이웃이 될, 가족이 될 수많은 이들을 무자비하게 잃었다. ‘육지놈들, 육지경찰놈들, 서청놈들, 미국놈들, 침략자들’에게 살해당하고 살육당했다. 4.3도 518도 6.29도... 변화의 장면마다 청년들의 피가 흐른다. 소설을 읽을수록 현실 역사로서 제주4.3을 더 자세히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서청과 경찰에 대한 분노가 미친 듯이 끓어올랐다.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고 청년들은 생각했다. (...) 어른들도 크게 동요했다. 이러다간 우리 자식들이 모두 맞아 죽겠다고 생각했다.” 해녀들은 일본군이 버린 총과 탄약을 바다 속에서 건지고, 누군가는 대숲에서 죽창을 깎았다. 봉화가 오르고 봉기가 시작되었다. 울고 싶다. 이들은 물론 더 많은 무고한 이들은 사냥당할 것이다. 죽임 당할 것이다. 내 일이라고 생각하면 나도 못 참았을 것 같지만... 그래도 숨죽여 한 명이라도 더 살아남는 게 나았을까. “제주도 폭동 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 삼십만이 희생되더라도 무방하다. 제주 백성 아니라도 나라가 선다.” “건국에 저해가 된다면 휘발유를 뿌려 온 섬을 붙태워버릴 수도 있다.” “사태의 원인에는 흥미가 없다. 나의 사명은 오직 진압뿐이다.” 파사현정*을 세우고자 흉악무도**를 꾸짖던 지난 주 명진스님의 큰 목소리가 다시 귀에 들렸다. 친일파, 서청, 이승만 정권, 미군정 네 이놈! * 破邪顯正(破 깨뜨릴 파, 邪 간사할 사, 顯 나타날 현, 正 바를 정) : 사악(邪惡)한 도리를 깨뜨리고 바른 도리를 드러낸다는 뜻. ** 凶惡無道 : 성질이 거칠고 사나우며 인간으로서의 도리가 없음. 조바심과 이탈과 보복과 분노의 살상은 이제 공동체를 망가뜨린다. 번갈아 서로를, 가족을 죽이고 불을 질렀다. 친구가 친구를, 친척이 친척을 죽였다. 제주는 이렇게 찢겨나갔다. 외부의 폭력은 더 거대해졌다. 공포와 처형이 늘고 총성이 커졌다. 불길이 마을을 뒤덮었다. ‘모조리 죽이고 태우고 빼앗는’ 삼광 작전은 아비규환의 지옥도를 벌였다. 그리고... 살아남은 이들이 있다. 어떻게 삶을 다시 시작했을지 내 깜냥으로는 상상이 어렵다. 이게 뭔가, 왜 아직 반복되는가. 너무나 생생해서 많이 아픈 소설이다. 그보다 더 아팠을 역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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