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종과 어떤 대통령 후보
조선의 25대 왕 철종에 대해서는 오해가 많은 것 같습니다. 흔히 그가 강화도에서 농사짓고 나무나 베던 일자무식 까막눈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이 아닙니다. 14살 되던 해인 1844년 큰형이 역모에 휩쓸리면서 연좌제로 유배가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그는 서울에서 왕족의 일원으로 그럭저럭 살았습니다. 19세 때 별안간 왕이 되었을 때 그가 밝힌 바에 따르면 천자문은 떼었고, 통감 2권과 소학 1,2권을 읽었다고 하였습니다. 중학교 중퇴 정도의 학력과 교양은 가지고 있었던 셈입니다.
즉위해서는 다 알다시피 순조의 비였던 순원왕후가 3년 간 수렴청정을 하였습니다. 제왕학 등 왕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 소양이 부족했으므로 필연적인 수순이었습니다. 그러나 제법 영민한 데가 있었다고 하지요. 친정을 하게 되자 나름 개혁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썩어빠진 조선의 체질은 삼정(군정, 전정, 환정)의 문란이라는 중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진주민란을 시작으로 전국적 규모의 민란이 일어났습니다.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 유명한 노론 안동김씨 세도세력과 역시 안동김씨였던 처가의 저항에 부딪쳐 어떠한 개혁적 시도도 불가능했습니다. 기득권과의 힘겨루기에서 패배한 철종은 삽시간에 무너져 내리기 시작합니다. 안동김씨의 꼭두각시라는 자괴감과 자포자기. 여색과 술에 빠져 스스로 망가져갔습니다. 결국 1863년, 33세의 이른 나이에 서거하게 됩니다. 중전 철인왕후와 후궁들 사이에서 5남 6녀의 자녀를 두었지만 어려서 다 사망하고 단 한 명, 영혜옹주(훗날 개화파/ 친일파 박영효의 부인)가 남았으나 혼인한 지 3개월만인 14세에 사망해서 후손이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권좌라는 일장춘몽. 인생무상.
철종 이야기를 빌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작금에 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선 분을 보면 어쩐지 철종의 그림자가 감지됩니다. 중학교 중퇴 수준의 교양도 그렇고, 전혀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 후보라는 것도 그렇고, 장모와 부인과 무속인들의 수렴청정이 예비돼 있다는 것도 그렇고, 주변에 골수 기득권 세력들이 입을 벌리고 있다는 것도 그렇습니다. 숨어있는 실제 권력자들에게 꼭두각시처럼 이용 당하다가 여색과 술로 저물어 갈 것 같다는 예감조차 확연합니다. 지금 그를 둘러싸고 있는 인사들의 면면을 보면 대통령 후보는 고사하고 건전한 야당으로서의 위신조차 유지하기가 어려워 보입니다. 참담한 수준입니다.
극단적 진영논리와 민심 이반, 기득권 세력의 준동, 기회주의자들의 득세... 철종 이후 조선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권력자는 결국 백성을 굶주리게 하고 나라를 망하게 합니다. 박정희와 전두환을 그리워하고 이명박과 박근혜를 지지했던 자들에게 또 나라의 미래를 빼앗길 수 없습니다. 출마자도 무식하고 유권자도 무식한 것은 결국 우리 공동체의 위기로 작용합니다. 이 시대에 무식하다는 것은 곧 부도덕하다는 뜻입니다. 후손과 공동체의 안전과 안녕 따위 자기 알 바 아니라는 부도덕성! 정신 차려야 합니다. 정신 차려야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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